등록 : 2009.12.14 21:33
수정 : 2009.12.1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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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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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붉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더니 저만치 보이는 북한 신의주 위로 붉은 해가 덜컥 솟아올랐다. 압록강 위로는 물안개가 끊임없이 피어 날아올랐다. 그 위로 중국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철교(중조우의교)와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끊긴 압록강단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난 4~8일 압록강변의 단둥에서 두만강변의 훈춘까지 1300㎞가 넘는 북-중 국경을 따라 이동하며, 이곳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의 풍향을 알아내려 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한 단둥에서는 신구개발이 한창이다. 한국과 싱가포르 자본까지 몰려들고 있고, 건설중인 고급 고층 아파트들과 들썩이는 부동산 가격으로 떠들썩하다. 북한에서도 변화의 소식은 들려온다.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의 유초도를 잇는 신압록강대교 공사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북한도 유초도를 자유무역을 위한 경제특구로 개발하는 등 경제개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교차하는 중국 훈춘에는 변화의 풍속이 더욱 빠르다. 중국 중앙정부가 나서서 창춘-지린-두만강지역 개발을 국가적 개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고, 그 핵심에 중국 동북지역의 물자가 외부로 빠져나갈 창구로 개발되고 있는 북한 나진항이 있다.
중국과 북한은 ‘미워도 다시 한번’ 손을 꼭 잡고 양국 국경지대에서 경제개발을 적극 추진할 태세다. 동북아 지형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그 움직임 속에서 한국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취재 도중 북한을 오가며 오랫동안 일을 해온 한 전문가의 사무실에서 북한이 보내온 지도와 편지를 보았다. 기름종이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그리고 색을 칠한 지도에는 함경북도에 있는 한 광산의 위치와 지형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함께 부쳐온 편지에는 정성스럽게 쓴 글씨로 광산의 위치와 광물의 특징 등이 두 쪽에 걸쳐 자세히 쓰여 있었다.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북한에서 보내온 지도와 편지였다. 오늘도 중국의 많은 사무실로 이런 북한의 지도와 편지가 배달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기업들은 이를 통해 북한의 자원들을 품 안에 끌어안고 있다. 한국이 남북경협을 ‘퍼주기’로 매도하고 남북관계를 방치하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북한을 오가며 10년 이상 교류하고 있는 한 재중동포는 “북한은 한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은 남북관계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과 똑같다고 본다. 그러니까 중국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며 “얼마 전까지 평양 시내에 남쪽 승용차가 많이 돌아다녔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모두 사라졌다”고 북한의 한국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전했다.
단둥에서 이 지역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 한 한국인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더이상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고 아쉬워했다.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데 적지 않은 돈을 쓰지만 그들과 우리 사회가 겪는 부작용이 모두 큰 상황에서, 그들이 북한 사회에서 가족과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고 남북이 격차를 줄여 통일로 나아가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다시 역사적 전환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의 개혁개방도, 북-미 대화와 평화협정 논의도 새벽녘 해가 떠오르듯 급작스럽게 진행될 수 있다.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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