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04 22:14
수정 : 2010.01.0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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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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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년 새해를 맞아 중국 지도자들은 폭설과 강추위를 뚫고 ‘인민 속으로’ 찾아갔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1일 허베이성의 한 농촌을 방문해 농민들과 대화를 나눴고, “정부가 새해 1호 문건을 통해 농촌을 강화하고 농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영하 28도의 추위 속에 최북단 헤이룽장성을 찾아간 원자바오 총리는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 축소와 농촌 생활수준 향상을 약속하며, “백성들의 생활이 행복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 정치스타로 떠오른 보시라이 충칭 당서기는 “관리들이 하루종일 부자들 주위만 맴돌며 가난한 이들과 멀어지면 안 된다”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국 지도자들의 경쟁적인 ‘농민 속으로’ 행보에는 체제 선전의 분위기도 풍긴다. 그러나 경제위기 속에서 중국 정부가 더이상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 수출에 매달리는 모델 대신, 농민의 소득을 늘리고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켜 내수를 확대하는 데서 중국 경제의 미래를 찾겠다는 모습에는 중국인들이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에선 “총리, 수고가 많으시다” 등의 따뜻한 댓글이 줄을 잇는다. 중국 정부는 올해 농촌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고 농촌의 공공서비스와 의료·교육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심각한 빈부격차와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는 크지만, 최고 지도자들은 적어도 백성을 두려워하며 사회통합과 안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들은 중국 역사를 이끌어온 농민 반란의 역사를 잘 알고 있으며, 공산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는’ 농민혁명에 거대한 빚을 지고 있음을 기억한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당나라 시대의 명재상 위징의 간언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인들 또한 거대한 중화세계가 분열의 난세로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줄 강력한 ‘황제’를 원한다. 문화대혁명의 상처가 드러난 상황에서도 중국인들이 마음속 깊이 마오쩌둥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가 현대의 가장 강력한 황제였기 때문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조차 “중국에는 나쁘더라도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 양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강력한 황제가 백성을 다독이고 국내 안정을 유지하며 중화의 ‘성세’를 향해 달려가느라 발걸음이 바쁜 국가다. 국민들도 이 방향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중국이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고한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현대판 황제’를 원하는 중국의 현실은 외부 세계와 갈등을 빚는다. 황제는 중화의 주권과 위엄을 강조하며 외부의 어떤 비판과 충고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지난달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의 온실가스 자율감축 목표에 대한 국제적 검증을 요구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반발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 중국 정부는 인권운동가이자 작가인 류샤오보를 석방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강하게 비판하고, 체제전복 선동 혐의로 11년형을 선고했다. 마약 밀수 혐의로 붙잡힌 영국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집행했다. 이는 국내에선 외부의 압박과 ‘내정간섭’에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환영받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강해진 중국의 오만으로 비친다.
중국의 진정한 전성기는 ‘황제’가 정치·경제·군사적 힘과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겸비하게 될 때 찾아올 것이다.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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