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17 18:18
수정 : 2010.06.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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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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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대체로 믿는다. 만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주장에 대한 개인 의견을 요구한다면, “그런 것 같다”고 말할 것 같다. 군사전문가도, 선박전문가도 아니어서 독자적인 논리를 갖기 힘든 탓도 있지만, 최소한 2010년의 대한민국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납득되지 않는 몇 가지 의문은 여전히 있다. 최근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난 ‘맷돌 손잡이 빠진 듯한’ 대한민국 군의 행태를 접하자 의문이 더 커지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의문들’은 조사단이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지, 감히 조작이나 날조를 시도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에 이전에 발간한 ‘천안함 영문보고서’를 보낸 것 때문에 난리다. 보수진영의 말처럼 새로운 건 없다.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제기됐던 의문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 8가지 의문 중 몇 가지는 조사단 해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또 몇 가지는 조사단 해명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데 참여연대가 ‘이런 의문들이 있다’고 유엔에 보낸 것이 그렇게 죽을죄인가?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우편통신의 자유를 잃게 됐나? 보수단체의 위협적 시위, ‘이적 행위’, ‘등에 칼을 꽂는’ 따위의 섬뜩한 언사, ‘국론분열 책동’ 등 추억 속 용어들이 대거 부활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의 구호가 연상된다.
참여연대를 몰아붙이는 보수진영의 손가락은 참여연대뿐 아니라, 논란을 지켜보는 국민들을 향해서도 “너는 어느 편이냐”고 심문하는 듯하다. 몇 년 전 영화배우 유오성이 출연한 한 증권회사 광고에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을 그렇게 칭송하더니,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형님’ 앞에 도열해 “예, 알겠습니다”를 복창해야 하는 조폭사회가 된 것인가?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참여연대의 유엔 안보리 서한 발송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는 의견이 50.0%였고, ‘적절했다’는 의견은 19.2%였다. 그런데 ‘모르겠다’가 30.8%로 3명 중 1명이다. 정말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같은 윽박에 의견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지방선거 전 여론조사처럼.
일반 미국인들이 남의 나라 일인 천안함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마는, 주변 미국인들에게 이번 이야기를 들려주며 의견을 물어보았다. 대부분은 북한과 김정일을 혐오하고, 조롱한다. 그럼에도 참여연대 서한에 대해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4일 유엔 안보리 브리핑에서 어떤 이사국도, 우리 정부도, 그리고 북한도 참여연대 서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아무런 반향이 없다. 어느 외교소식통은 “참여연대 서한이 안보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다.
이번 일이 입에 거품을 물 만한 사안도 아니지만, 그렇게 외부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면 쓸수록 점점 더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일그러질 수 있다. 안보리 논의에서 정부가 기대하는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못 얻으면 “이게 다 참여연대 때문이야”라고 할 건가? “왜 믿지 못하나”라고 질책하는데, 천안함 조사결과 보고서가 언제부터 신앙서적이 된 건가?
볼테르가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을 때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18세기였다. 지금, 21세기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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