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02 18:45
수정 : 2010.09.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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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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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7일 밤, 일본 방위성이 사흘 뒤로 예정된 ‘2010년 방위백서’ 채택을 연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일본 기자에게 전해들었다.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위성은 이날 낮에도 29일 외국 기자 대상으로 열기로 한 백서 설명회 출석 여부를 재확인하는 팩스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주일 한국대사관과 외교부 관계자들은 연기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날 밤늦게 <교도통신>은 ‘복수의 정부·여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방위백서 발표 연기 소식을 보도했다. 이튿날 연기가 공식 확인됐다. 일본 언론들은 총리 관저의 방위백서 발표 연기 요청을 방위성이 반대해 결정이 늦어졌다고 전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일본 민주당 정부가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의 관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당시 ‘8월 총리 담화’를 준비하고 있던 간 나오토 정부로서는 담화에 앞서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기술한 방위백서가 나와 한국을 자극하는 것을 바라지 않은 듯하다. 그것이 한국을 배려한 것인지, 일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딱 부러지게 판가름하기는 물론 어렵다. 내부의 강한 반발을 억누른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역시 외부를 배려했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방위백서 발표는 단지 연기됐을 뿐이다. 들리는 바로는 오는 10일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 대표 선거가 치러지는 14일 이전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란다. 문제는 일본 방위백서 내용이 지난해와 똑같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방위백서는 “우리나라(일본) 고유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2005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표현이다.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은 7월28일 기자회견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우리 국가는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어, 올해도 같은 표현이 들어갈 게 거의 틀림없다. 2010년판 방위백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왔다.
사실 우리는 일본의 정권이 보수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자 많은 것을 기대했다. 역사인식을 바꾸고 미해결 상태의 식민통치 유산을 청산하기를 바랐다. 특히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더는 주장하지 않기를 바랐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그러기엔 아직 민주당의 힘이 너무 약하다고 말한다. 이해할 만하다. 일본 정치사에서 민주당 정권은 이제 갓 돌배기다.
그렇다고 침묵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에 우리 국방부는 일본 방위백서가 나오자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기술한 것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며, 일본 정부의 즉각적인 시정 조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감’까지 반영하고, 더욱 강하게 삭제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원칙이 어떻든 ‘마음가짐’과 ‘행동’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본 민주당이 아무리 전향적이라고 해도, 국내 정치 여건을 고려할 때 영토 문제에서 뒷걸음질하기 어렵다는 건 분명하다. 내년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시된 지도가 실리게 된다. 자민당 정부 시절의 흐름을 타고 민주당 정부에서 결정한 일이다. 이런 움직임을 일본이 안달하는 것으로 조금은 여유를 갖고 볼 필요가 있다. 독도는 현재 우리가 확실히 지배하고 있다. 일본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독도 문제로 스트레스를 더 받는 쪽은 일본이어야 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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