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16 20:58
수정 : 2010.09.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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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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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추격자들이 많다. 그의 학교, 같은 반 친구들을 기자들이 찾아다니고, 그가 지난달 중국에 왔었는지, 와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한국 언론은 책 여러 권 분량의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의 ‘방중설’을 둘러싸고 한국 정보기관 수장까지 나서서 김정은이 중국에 와서 중국 지도부의 승인을 받는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봉건적 세습에 대한 혐오가 맞물려 ‘김정은 신드롬’이 번지고 있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김씨 왕조’와 이를 감싸안은 중국의 기묘한 관계로 색칠된 이런 시나리오가 한국에서는 기정사실이자 이번 김정일 방중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김정은과 중국의 만남이 단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북한 후계구도를 승인하려고 멀리 창춘까지 갔을까?
김정일 위원장은 유럽에서 교육받은 스물일곱 어린 아들에게 복잡한 나라를 맡겨야 할 불안한 상황에 대해 중국의 지지를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중국이 쉽게 답을 주었을까?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중국의 전문가는 “후진타오 주석이 파격적으로 창춘까지 가서 김정일을 영접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북한 후계구도 문제에 확답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중국인들은 내용적인 면에서 노(No)라고 말할 때 더욱 예의를 차린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서 임기가 2년 남은 후 주석이 북한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의 속내는 북한의 안정이 유지되는 한 이 문제는 북한의 결정에 맡긴다는 ‘묵인’이며, 아울러 북한의 후계자 또는 후계체제가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과 중국의 뜻은 어디서 통했을까? 양국을 묶는 경제협력을 통한 전략적 밀착, 그리고 이를 통한 북한의 안정화다. 김정일 방중 이후 중국과 북한 고위관리들이 공개적으로 ‘두만강 유역 초국경 경제협력지구’ ‘가공무역과 중계무역 중심의 나진·선봉 국제무역지구’ 개발 계획들을 밝혔다. 중국 훈춘의 해운회사가 북한 나진항과 중국 칭다오항을 오가는 컨테이너 항로를 개통하기로 했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 북한 주민들이 왕래하며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조성되고 있다. 중국 세관 통계를 보면, 주로 북한과의 무역에 이용되는 훈춘의 취안허(권하), 사퉈쯔 세관의 올 상반기 무역량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269.7% 늘어 두만강 유역의 북-중 무역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의 바람에 대해 최근 중국 관영 <세계신문보>는 “중국, 러시아, 북한은 이미 일본과 한국을 배제하고 솔선해서 동북아 경제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로동신문>에는 북-중 우호관계가 전성기를 맞고 있고, 중국 동북3성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글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을 선언한 상황에서 김정은에게 나진·선봉 특구 개발을 책임지게 하고 중국의 동북개발 계획과 보조를 맞춰 경제를 회복시키는 가시적 성과를 내게 해 후계구도를 굳히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이 경우 중국도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을 유도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창-지-투’ 지역 개발의 숙원사업을 성공시키는 수확을 얻게 된다.
한국이 김정일과 김정은의 ‘혁명유적 순례’와 ‘세자 책봉 승인설’에 매달려 스스로의 시야를 가리는 동안, 중국과 북한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며 저만큼 달려나갔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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