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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12 20:05 수정 : 2011.11.21 16:04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김 주석은 선전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1987년 5월24일,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사흘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을 배웅하면서 물었다. 덩샤오핑은 나란히 앉은 김일성에게 “기회가 생기면 선전에 가서 보길 바랍니다. 선전에서 생산된 고급 제품은 국제시장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6~7년 만에 선전은 작은 마을에서 국제적인 현대화 도시가 됐습니다”라며,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설 것을 권했다. 중국 경제 기적의 발원지인 광둥성 선전을 취재하러 갔을 때 박물관에서 만난 사진 속 모습이다.

베이징대학의 한 교수는 “1986년 북한에 갔을 때 텔레비전에 경제학자가 나와 장시간 국제무역과 농업개혁 등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당시 평양 거리에선 개혁의 활력이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북한판 개혁개방의 싹은 1989년 중국의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시위와 동구권 몰락 이후 사라져 버렸다. 체제 불안을 느낀 북한 정권이 개혁을 포기하고 핵무기 개발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보수파의 반발 속에서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밀고 나간 것과는 너무 다른 선택이었다.

지난달 말 두만강을 따라 북-중 국경을 달렸다. 국경지대의 중국 지린성 훈춘엔 눈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희고 노란 꽃들도 활짝 피어 있었다. 봄을 기다리는 국경지대를 따라 중국과 북한의 협력 움직임이 곳곳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중국은 막대한 돈을 투입해 북한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다리, 국경 검문소와 세관을 정비하고, 끊어진 철도를 잇고, 새로 철도를 놓는 공사들을 계속하고 있다. 이달 말 북한의 나선특별시와 신의주 황금평을 중국과 북한이 합작개발하기로 선언하는 도로 착공식과 행사들이 열린다고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밝히고 있다. 북한은 나선과 황금평 개발을 사실상 중국에 맡겼다. 중국이 개발계획을 마련하고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전통적으로 북-중 경제협력과 교역의 주요 통로인 단둥·신의주에선 황금평 개발과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추진하고, 훈춘~나선은 중국 동북지역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동해 통로로 개발해, 투트랙으로 중국과 북한의 경제를 일체화하는 전략이다.

중국 쪽 관계자들은 “20년 넘는 기다림 끝에 북한이 변하고 있다” “이번에는 잘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북한이 문을 열고 나오려는 이 무대에서, 오랫동안 북한의 개혁개방을 고대하며 노력했던 한국이 설 자리는 사라져 버렸다. 북한과의 모든 경제협력과 교류를 차단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최근 통일부 장관을 유임시켜, 지금까지의 대북 강경정책이 ‘성공’이라고 자평하면서 이를 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강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도 동의했던 중국은 왜 북한을 다시 껴안기로 결정했을까?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 구조가 강화되는 구도에서 북한의 안정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단절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과 지원을 끊어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전략이 효과를 낼 수 없는 구도가 이미 짜여 있는 셈이다. 한국의 압박정책은 오히려 북-중 관계를 사상 유례없이 긴밀하게 만들고 있다.

북-중 국경에선 ‘북한은 구제불능’이라는 한국의 비웃음과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중국의 자신감과 풍부한 자금력이 맞붙고 있다. 나선이나 황금평이 중국의 첫 경제특구 선전처럼 천지개벽의 성공을 거두긴 어렵더라도,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지는 현실은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이명박 정권 5년은 중국과 북한을 유례없이 밀착하게 만든 동북아의 대전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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