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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1 19:27 수정 : 2012.06.21 19:27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이 마침내 소비세를 올릴 모양이다. 집권 민주당과 제1·2 야당이 합의해 현행 5%인 소비세율을 2015년 10월부터 10%로 올리기로 했다. 여당 일부 세력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법안 통과를 가로막을 수 있는 정도는 못 되는 듯하다.

일본의 재정 현황을 보면 어떻게든 증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갑절에 이르고, 매년 40조엔씩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부 일반회계의 절반을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지경이다. 신용평가 회사들은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국채 신용등급을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증세를 위해 소비세율을 올리는 것은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다. 무엇보다 소비세는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세율이 적용되는 세금이다. 이번 증세안을 보면, 세율을 올리는 대신 저소득층에게 보조금을 주기로 했는데 그것만으로 형평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율을 10%로 올려도, 재정 적자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과거 일본의 소비 규모로 볼 때, 5%의 세금이면 연간 10조엔의 세금이 더 걷힌다. 하지만 이는 연간 신규 국채 발행액의 4분의 1가량에 그친다. 게다가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세수 증가분이 점차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이번 증세안에 대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찬성보다 많다. 실제 세율이 오르고 나면 부정적인 여론이 더 커질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9년 3%로 소비세가 처음 도입됐다. 그 전에 소비세 도입 문제로 내각이 두 차례나 무너진 역사가 있다. ‘빨간 신호등은 함께 건넌다’는 교훈대로, 이번엔 여야가 합의해 증세 법안을 마련했다. 정치적 부담을 나눠 지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장 큰 타격은 집권 민주당이 입을 것이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소비세 인상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일본판 열린우리당’이 될 것이라던 항간의 예언은 지금 거의 맞아들어가고 있다. 노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해 있고, 지금 선거를 치르면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15%가량으로 20%쯤인 자민당에 크게 뒤지고 있다. 2009년 8월30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중의원 480석 가운데 무려 308석(64%)을 석권하며 1955년 이후 처음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민주당은 이미 정권교체 당시의 정체성을 거의 상실했다. 민주당은 재정 지출을 ‘콘크리트에서 사람에게’ 옮기겠다고, 이권집단의 나눠먹기를 없애고 복지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증세는 없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복지공약은 대부분 철회했고, 안 한다던 증세에 오히려 총대를 메고 나섰다.

세계 금융위기,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유럽 재정위기 등 사태는 민주당이 공약을 실행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여건’에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게 정치다. 2005년 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민당에 296석을 몰아준 유권자들은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이번엔 극우 성향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을 바라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지금 일본에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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