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5 19:17
수정 : 2012.07.0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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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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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의 끈적끈적한 무더위는 변한 게 없었다.
지난주 충칭에 갔다. 창강과 자링강이 만나는 차오톈먼(조천문) 부두는 한밤중에도 무더위를 피해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충칭 당서기에서 실각한 보시라이 사건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했건만, 이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아니, 보시라이의 흔적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곳곳에 붙어 있던 ‘10대 민생공정’이니 ‘5대 충칭’이니 하는 보시라이의 구호들은 다 사라지고, 대신 ‘과학발전’ ‘조화사회’ 등 후진타오의 구호가 곳곳에 등장했다. 이것이 충칭을 무대로 벌어진, 아직은 결말이 다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권력투쟁의 한 편린이리라.
충칭시 정부의 한 관계자는 “‘충칭모델’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게 됐다.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보시라이를 보고 충칭에 대규모 투자를 한 기업체 관계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물론 충칭 사람들의 마음속에 보시라이는 여전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시라이는 ‘유능한 지도자’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충칭을 공들여 가꿨다. 매년 20% 가까운 성장률을 자랑했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제는 빚더미로 잔치를 벌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하지만 충칭 토박이인 회사원 야오 아무개(40)는 냉정했다. “나는 보시라이에 아무 관심 없다. 우리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오나 아무런 상관 없다. 변두리나 농촌에 가면 돈 없어서 밥 굶는 애들, 학교 못 가는 애들, 아파도 병원 못 가는 사람들 너무 많다. 보시라이가 돈 퍼부어서 개발구 만들고 성장률 높이고, 그런 것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
보시라이는 국유기업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해 좀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몰락하고 난 뒤 그의 일가가 권력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고, 그것을 국외로 도피시키려 했고, 그 과정에서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게 드러났다. 좌파적 경제모델인 ‘충칭모델’이 파산했으니, 중국이 이제 국가를 강조하는 좌파에 대한 환상을 접고, 시장을 강조하는 우파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국가냐 시장이냐’가 아니라, 국민이 특권층의 전횡을 감시하고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
지난주말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부주석 일가가 3억7600만달러(약 4310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누이와 매형, 남동생 등이 부동산, 희토류, 통신사업 등에 투자해 재산을 크게 늘렸다고 보도했다. 며칠 동안 중국에서 <블룸버그> 사이트는 접속이 전면 차단됐다.
중국에서는 요즘 권귀(취안구이·權貴)자본주의, 즉 권력과 자본이 결합해 사회의 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정실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관리들의 전횡에 항의하는 시위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중국의 권귀자본주의는 정치개혁 없는 경제성장의 부작용이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한국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불리던 대통령의 형이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것은 사회의 감시 기능을 파괴하며 퇴행해온 한국 권귀자본주의의 우울한 초상일까?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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