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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2 19:27 수정 : 2012.08.02 19:27

정남구 도쿄 특파원

‘핵무기는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의 이른바 ‘비핵 3원칙’을 표방한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는 197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2001년 출간한 <노벨평화상-평화를 향한 100년>에서 이를 ‘최대의 잘못’이라고 후회했다. 사토는 겉과 속이 달랐다. 그는 뒤에서는 ‘비핵 3원칙은 난센스’라고 말했고, 핵무기 개발을 타진하기도 했다.

사토 전 총리만은 아니다. 역대 일본 정부는 당장 핵무기를 보유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확실히 갖춘다는 목표로 일관해왔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현재 핵발전 연료용 우라늄 농축 기술과 시설을 갖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언제든 무기용 고농축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기술과 시설도 갖고 있고, 플루토늄을 이미 30t 이상 추출해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 가운데, 미국으로부터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받은 국가는 현재 일본뿐이다. 일본은 이와 별도로 핵무기에 쓸 수 있는 고순도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고속로(몬주)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일본이 부러운지, 우리 정부도 일본과 똑같은 길을 걸으려 시도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 교섭을 벌이면서 우라늄 농축 권리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핵무기와 무관함을 강조하지만, 우리 정부가 그것을 요구하는 이유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 정부가 가려는 길이 과연 옳은지 심사숙고할 일이다.

핵연료 재처리란 핵발전소에서 쓴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일이다. 이를 고속로에서 핵연료로 다시 쓰자는 것이니, 재처리를 하면 고속로도 필요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일본의 경험을 보면, 핵연료 재처리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일본은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1993년부터 재처리공장을 지어왔는데 그동안 건설비로만 2조2000억엔(약 30조원)을 썼다. 물론 지금도 고장이 잦아 본격 가동을 못 하고 있는데, 연간 유지비로만 1100억엔이 든다. 고속로 몬주도 거의 비슷한 꼴이다. 일본이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며 얻은 것이라곤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공간을 좀더 확보한 것뿐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재처리와 고속로 추진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위험하며, 전혀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게 거의 드러난 까닭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추진론자들은 일본의 실패한 경험을 어설프게 흉내내고 있다. 그걸 추진하면 얼마나 많은 떡고물이 떨어지는지를 잘 아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핵무기 강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가 핵으로 무장해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발상은 유치하다. 어지간한 핵무장으로는 별 위협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주변국을 자극할 뿐이다. 우라늄 농축공장과 핵연료 재처리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할 명분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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