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3 19:16
수정 : 2012.08.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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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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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대통령 독도 방문의 손익계산서 / 정남구
지난 10일 대부분의 일본 주요신문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계획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 정부 처지에서 보면 엄청난 사태다.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곳에 다른 나라 국가원수가 발을 들여놓는 것을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니 참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쾌하게 한방 먹인 것 아닌가? 그렇다. 국가원수가 다른 나라 눈치를 보느라 가지도 못한다면, 그게 어디 우리 땅인가. 이 대통령은 우리 속을 잠시 후련하게 해줬다.
그런데, 잔치가 끝나면 청구서가 날아오는 법이다. 크게 당한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 재판에 응하지 않는 한국을 궁지로 몰아보겠다는 것이다. 고약한 주장은 더 심해졌다.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한국이 독도를 일방적으로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옛 자민당 시절의 표현을 끄집어냈다. 그동안은 극우 <산케이신문>만 쓰던 ‘시마네현 다케시마’라는 표기가 이제 거의 모든 일본 언론으로 퍼졌다.
일본 민주당 정부는 2009년 9월 출범 이후 ‘독도 문제’로 한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 외교청서와 방위백서의 독도 관련 표현은 한 글자도 손대지 않았다. 물론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전부터 주장하고 있었으니 우리는 화날 일이지만, 갈등을 키울 일은 피했다. 중·고교 교과서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서술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 또한 그 뿌리가 과거 자민당 정부의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있었음을 고려하고 봐야 한다.
그런 일본의 움직임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크게 바뀌었다. 독도 갈등은 배외주의 성향을 띠는 보수·우파의 입지를 매우 키워놓았다. 일본에서 독도 문제가 이번처럼 크게 화제가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유력 신문사의 한 한국 담당 기자는 “중·고교 교과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교육해온 것의 몇십배에 이르는 선전효과를 보수파들이 거뒀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보수화는 꽤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사회가 무기력할 때,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이 과거 전쟁에서 인간으로선 못할 짓을 했다’는 식의 이야기에 염증을 느끼고, ‘자랑스러운 일본’을 설파하는 이들에게 환호를 보내기 쉽다. 그런 이들이 아직 일본 사회의 주류는 아니지만, 그들이 일본을 지배할 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불편할 것이다.
독도 문제는 대일본 외교의 한 부분이다. 옛일을 생각하면 곧잘 피가 거꾸로 솟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협력관계를 깨는 것은 서로에게 손실이 너무 크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화가 나도, 침착할 이유가 있다. 독도는 지금 확실히 우리 손안에 있고, 전쟁 같은 급변사태 아래서가 아니면 영토 변경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일본의 독도 도발에는 꼭 필요한 만큼만 대응하는 것이 옳다. 독도를 분쟁지로 만들고 현재의 협력관계를 파탄내려는 일본 내 정치세력을 돕는 결과로 이어질 대응은 피해야 한다.
손익계산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보면서, 사람들이 ‘패배’라고 비웃어도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생각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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