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27 19:37
수정 : 2012.09.27 19:37
|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
온 사방에서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항의하는 중국내 반일시위가 정점을 이룬 지난 18일 베이징 일본대사관 앞은 거대한 연극 무대였다. 마오의 초상화나 ‘일본을 향해 발포하자’ ‘일본 ×들을 죽이자’ 같은 살벌한 펼침막을 든 시위대는 수백명씩 조를 나눠 행진했는데, 선두에서 공안들이 시위대를 ‘지휘’하는 이색적인 상황이었다.
마오의 초상화를 든 이들은 마오를 ‘강력한 지도자’, ‘항일 영웅’으로 칭송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오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부활’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마오교’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인지도 모른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부정의가 만연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에 대한 불안이 더해지면서 중국인들은 마오에게서 의지할 곳을 찾는다. 중국 소설가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중국이 발전한 이후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마오쩌둥이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썼다. 현실 불만을 자양분 삼아, 마오 시절의 향수를 대안처럼 내세우는 중국 좌파와 애국주의가 위험하게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나날이 거세지는 중화주의를 닮은 또다른 그림자가 일본에 있다. 이번 중-일 충돌의 도화선은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영토 문제를 이용한 일본 우파의 불장난이었다. 원전 위기,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제, 고령화와 기회를 빼앗긴 젊은층의 불만 등으로 길을 잃은 일본 우파들은 역사에 대한 반성과 ‘평화헌법’을 비웃으며 군국주의 시절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부추긴다.
일본 극우파의 대표주자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도지사가 지난 4월 센카쿠 국유화를 선언했을 때 중국과의 충돌은 이미 예고됐다. 역사를 보면, 1895년 일본의 오키나와와 센카쿠 획득은 팽창주의 침략의 산물이었다. 아울러 2차대전 이후 독도와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의 소지를 남긴 것은 미국이 구축한 동아시아 냉전질서였다. 이번 사태 뒤에도 일본 내에서 센카쿠 영유권 주장이 침략 역사와 관련돼 있으며, 중-일 수교 당시의 묵계를 깨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반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력한 차기 총리로 떠올랐다.
현실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향수에 의존하는 중국의 좌향좌와 일본의 우향우가 동아시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센카쿠 갈등은 표면의 증상일 뿐, 중·일 양국 내부의 수많은 모순과 정치적 혼란이 깊은 뿌리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미래를 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최근 아시아 곳곳에서 ‘섬 분쟁’이 격렬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취약한 해군력 탓에 수십년 동안 주변 제해권을 미국에 내줘야 했던 중국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과의 ‘공동 통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다. 미국은 이 지역의 복잡한 영유권 분쟁을 적절히 이용해 중국 포위망을 짜려 한다. 현재는 중-일이 충돌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은 언제든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한반도 주변에서 두 과거와 두 미래가 위태롭게 충돌하고 있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