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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5 18:57 수정 : 2013.08.15 18:57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대책이 없다. 피할 수도 없다. 속수무책이란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다. 베이징의 공기오염 이야기다.

6월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 베이징을 찾은 한 고위 인사의 일화다. 그는 시내 중심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외국 출장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이 인사는 창을 열고 어둠이 내리는 베이징 시내를 보며 말했다고 한다. “운무가 자욱하니 끼니까 더 운치가 있네요.” 열린 창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그를 보다 못한 한 베이징의 수행 직원이 어렵게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이건 운무가 아니고요, 스모급니다.” 이날 베이징엔 중증 스모그 주의경보가 내렸다.

베이징의 공기오염은 이젠 변수가 아니다. 겨울뿐 아니라 일년 내내 나타나는 상수다. 기자의 사무실은 19층이다. 작은 창으로도 웬만한 주변의 경관은 내려다뵈는 위치다. 그러나 이 창으로 머지않은 곳에 산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베이징에 도착한 뒤 한 달여가 지난 뒤였다.

“어, 산이 있었네….” 어처구니없는 말이 절로 새어 나왔다. 스모그가 절정으로 치닫던 2~3월, 희뿌연 대기는 산마저 시야에서 가로막아 버린 것이었다.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을 앞둔 한 기자는 “지난해 겨울을 기준으로 해 베이징의 공기오염은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가끔씩 해외토픽난에 사진으로 등장하는 방독면을 쓴 채 자전거를 타는 시민의 모습은 베이징 시내에선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이런 괴상한 모습은 지금도 거리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흔했던 자전거 행렬이 사라진 것도 단순히 중국의 평균 소득이 올랐기 때문이 아닌, 경제 발전과 더불어 심각해진 대기오염 탓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심각성은 기자만 느끼는 게 아닌 모양이다. <뉴욕 타임스>의 한 베이징 특파원은 최근 ‘독성 있는 나라에서의 생활’이란 칼럼에서 대책 없는 하소연을 한바탕 풀어놨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두 박스의 공기필터와 열두 박스의 분유를 들고 베이징으로 귀국하려고 서성이는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필터를 갈아끼우다 숲 속 이끼처럼 두텁게 먼지 낀 필터를 보고 기겁했다고 했다. 이어 “베이징으로 오기 전 테러와 방화가 빈번한 이라크에서도 3년 반을 지냈지만, 여기서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 앱으로 미국 대사관이 발표하는 대기오염 지수를 확인하고,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연상케 하는 방독 마스크를 쓴 채 출근을 한다”고 했다.

각종 자료들은 연일 베이징의 대기오염을 경고한다. 중국 환경보호부는 지난달 “올해 상반기 60%의 기간 동안 베이징의 공기질이 해로운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한 미국의 저명한 과학잡지는 베이징을 포함해 과도한 석탄연료 사용 탓에 대기오염이 심한 중국 북부지역 주민의 평균 수명이 남부지방 주민보다 5년이 짧았다고 발표했다. 급기야 악명 높은 공기 탓에 올해 상반기 베이징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해보다 14.3%나 감소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베이징 시민들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공기는 평등하다”고. 자금성 서쪽 중난하이에 모여 사는 중국 최고지도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나 마시는 공기는 똑같다는 촌철살인의 풍자 혹은 냉소다. 극심한 빈부격차 탓에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국에서 공기야말로 사회주의 주요 이념인 평등에 가장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평등을 바랄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시민)이 어디 있겠는가. 외국인인 나도 이런 평등은 사절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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