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5 19:01
수정 : 2013.09.0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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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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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70여㎞ 떨어진 무톈위 만리장성에 올랐다. 1000여m 높이의 산 정상 능선을 타고 끝도 없이 이어진 성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했다. 성벽 안쪽의 높이는 3m가량에 불과했지만, 적이 공격해 오는 바깥쪽 성벽은 가파른 산세와 어우러져 보통 7~8m가 넘는 높이를 자랑했다. 베이징을 향해 치달려온 북방 침입자들에겐 충분히 당혹감과 막막함을 주고도 남을 위용이었다.
고대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었다면 현대 중국엔 또 하나의 만리장성이 있다. 그레이트 파이어월이라는 인터넷 검열 시스템이 그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통치에 해롭다고 판단되는 사이트 접속을 차단한다. 시진핑 주석이나 원자바오 전 총리 일가의 재산을 폭로한 <뉴욕 타임스>나 <블룸버그>를 비롯해 중국 당국이 민감해하는 인권, 소수민족 탄압 문제 등을 자주 다루는 <비비시>(BBC)와 일부 홍콩 언론 사이트 등은 한때 접속이 차단되거나 지금도 여전히 접속이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견고한 검열을 자랑하는 중국 당국이 최근 인터넷상의 만리장성을 더욱 높이 쌓아올리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당 선전간부 회의에서 “인터넷 여론을 장악할 강군을 키워야 한다”며 인터넷 ‘강군몽’을 역설했다. 이에 발맞춰 중국 당국은 최근 몇주 사이 영향력 있는 누리꾼 논객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재판으로 중국의 여론이 들끓던 지난달 25일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자주 쓴 미국 국적 중국인 쉐만쯔를 비롯해 지방 고위 관리와 중국 관변 기관의 비리 사실을 알린 30대 회사원과 기자들이 각종 혐의로 체포됐다. 저장성 공안청은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에 유언비어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단순히 퍼나르는 행위도 5~10일의 구류나 500위안(9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고했다.
이 정도면 가히 인터넷 공안정국으로 불릴 만한 대대적인 단속이다. 이마저 부족했는지 최근 공산당 선전부는 전국 37만여명의 기자들에게 “인터넷이 여론전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데, 언론 부분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틀 이상의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의무화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편으론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재판을 제한적으로 웨이보에 문자로 중계하며 “인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 공정한 재판”, “인터넷 중계로 법치, 부패척결의 역량 과시”라고 선전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공직자들의 비리를 인터넷에 고발하고 감시한 누리꾼을 잡아들이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중국 지식인이나 일반인들 사이에선 “이념이나 사상의 자유 측면에선 이전보다 퇴보했다”는 실망이 적지 않다. 한 중국 학자는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사회 비판과 비리 의혹을 법적으로 처벌하기엔 중과부적이다.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체제 위협이 될 것이란 걸 지도부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그만큼 각종 빈부·도농·지역 격차와 당내 특권층의 비리에 분노한 민심을 다루는 데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중국 황제들이 북방의 이민족을 두려워했던 것만큼 말이다.
반부패 인터넷 사이트인 <중국인민감독망>의 설립자 주루이펑은 이렇게 말했다. “유언비어는 진실을 입막음하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자유를 주면 걸러진다. 당국이 수십억위안을 들여 인터넷 성벽을 쌓고 있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누구나 이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위용을 자랑하던 만리장성도 역사적으로는 중국 역대 왕조들이 성벽 건설에 들인 품에 견줘 방어벽이란 본래의 군사적 구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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