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3 19:12
수정 : 2013.10.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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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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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한 지 7개월여가 지났다. 시중쉰 전 부총리를 아버지로 둔 태자당 출신답게 그의 첫인상은 자신감 넘치고 유연했다. 공식 석상에서 분위기를 푸는 농담도 곧잘 했다.
주석 자리에 막 오른 지난 3월,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단과 토론하는 자리에서 대기오염 문제가 나오자 “나는 피엠(PM) 2.5(지름 2.5㎛ 이하로 초미세먼지의 기준)가 없었고, 피엠 250(얼바이우)이 있었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중국에서 250의 발음인 얼바이우는 바보를 뜻하는 말인데 그만큼 자신이 대기오염에 무지했음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며칠 뒤엔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각 지방 정부 수장들이 강에서 수영할 수 있는지를 보면 간단하게 수질 검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우스개를 풀었다. 그의 소탈한 모습은 문화혁명 소용돌이 당시 궁벽한 시골 토굴집에서 하방 생활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기도 한 청년 시절과 오버랩돼 썩 잘 어울렸다.
거침없는 그의 모습은 택시 탑승 소동에서도 극명하게 부각됐다. 한 중국 언론은 3월 초 시 주석이 베이징 시내 관광 중심지인 구러우 거리에서 일반 시민처럼 택시를 탔고, 기사에게 ‘일범풍순’(만사가 순조롭게 풀리라는 뜻)이란 글도 써줬다고 보도했다.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역시 시 주석이다”, “모든 관리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글을 앞다퉈 올렸다. 소동은 관영 매체들이 이를 오보라고 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당시 많은 중국인들은 “시 주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권위를 중시하는 당 내부에서 오보로 갈무리했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그의 모습은 벌써 아득하다. 반부패 드라이브로 시작된 시 주석의 ‘근엄’ 모드는 군중노선 강화→여론 통제를 통한 뉴미디어 이념전 승리→자아비판 강화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졌다. 정부에 비판적인 파워블로거들이 줄줄이 연행됐다. 누리꾼들은 “언론 탄압이 전임 지도자들보다 더하다”고 비명을 질렀다. 시 주석은 9월 말엔 민생 현장을 시찰하다 숨진 쓰촨성의 말단 공무원을 배우라고 간부들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50년 전 마오쩌둥 주석이 군 복무 중 순직한 20대 젊은이 레이펑을 ‘이타주의의 모범’으로 삼아 배우자고 한 지시를 연상케 했다. 이런 분위기 탓일까. 12월엔 1960년대 이후 약 50년 만에 <마오쩌둥 어록> 개정판이 출간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 외신은 “시진핑의 마오 노선 답습과 마오쩌둥 어록 부활이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중국인 친구는 “앞으로 10년을 집권해야 하는 시 주석으로선 초기에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것 같다. 권력은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친근하고 격의 없던 시 주석의 이미지는 그새 완고하고 엄격한, 때론 성난 권력자의 인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초 그가 언급한 ‘헌정 입헌정치’에 기대를 걸고 정치 개혁을 말하는 목소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불과 몇 달 전 택시 탑승 진위 논란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선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가 돼버렸다.
잠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본다. 역시 벌써 아득하다. 경제민주화를 간판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에 성공한 박근혜 정부도 역시나 취임 일곱 달이 지나지 않아 재벌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실상 경제민주화 추진 종료를 선언했다. 노년층에 호소해 당선에 이바지한 기초노령연금 공약도 세수 논란 속에 증발할 위기에 몰려 있다.
인민과 국민들에게 불과 일곱 달 만에 지난 시간이 이토록 아득하게 느껴질지 지도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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