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7 19:18
수정 : 2013.11.0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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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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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매일 아침 조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참모들로부터 ‘데일리 브리프’를 받는다. 여기에선 현안 논의가 이뤄지고 중요 정보 사항들이 보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브리프의 절반 이상은 에드워드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의 기밀문서 폭로로 유명해진 국가안보국(NSA)이 생산하는 정보가 차지한다고 한다.
이 정보들이 어떤 것들인지는 우리로선 알기 어렵다. 그러나 드러난 국가안보국의 도·감청 행태를 보건대 주요국 지도자들 통화 내용도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톱시크릿’으로 분류될 것이 틀림없는 이런 정보들이 여기에서 빠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중 많은 정보들이 불법적으로 수집돼 왔다는 점이다.
미국은 내국인의 전화 통화나 이메일 내용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을 준수하는 시늉은 낸다. 비밀법정에서 영장을 받도록 하고, 의회의 감독도 받는다. 그러나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마저 없다. <뉴욕 타임스>는 국가안보국의 외국인에 대한 정보 수집 행태에 대해 ‘(기술적으로) 할 수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행해져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집 내용도 광범위하다. 최근 공개된 기밀문서 ‘미국 시긴트(SIGINT) 전략 임무 리스트-2007년 1월’을 보면, 국가안보국은 테러리즘과 국가 안보 관련 내용 외에도 외교적 우위를 점하고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정보도 핵심 대상으로 지정했다.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전시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관련해선 한국 지도자의 의도까지 파악하라고 돼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은 당연히 도청 대상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주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드러났음에도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문제 제기를 하면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인정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 도청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백악관은 “미국은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엿듣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엿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엿들었는지 여부는 교묘하게 생략했다. 이것마저도 유럽 최강국인 독일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것이다. 우리 같은 약소국들은 여론의 눈총 탓에 문제 제기를 하지만 독일처럼 강하게 나가지도 못한다.
이에 대한 미국의 해명은 얼핏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정보의 세계에선 어느 나라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정보 수집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고 당신들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정보의 세계에도 ‘비대칭’이 존재한다.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 지도자의 통화 내용도 엿들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약소국들은 그렇지 못하다. 과연 한국 국가정보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휴대전화나 백악관 전화를 도청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아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다. 들통났을 때 후과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평과 신뢰를 중시하는 나라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미국의 위선을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무차별적 정보 수집이 명백히 주권 침해 행위이고, 미국의 안하무인격 행태를 개별 나라가 제어할 수 없다면 국제 규범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화학무기 사용금지 협약이나 전쟁포로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약 등이 전쟁을 막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행위를 막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 만큼, 무차별 도청 행태에 대해서도 이런 협약을 만들 때가 된 것 같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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