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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1 19:15 수정 : 2013.11.21 19:15

길윤형 도쿄 특파원

“아, 글쎄요….”

도쿄의 주일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된 강제징용자 명부 등이 19일 공개된 것이 앞으로 한-일 관계에 끼칠 파장을 묻자, 관련 업무를 맡은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끝에 “간토(관동)대지진에 대한 진상규명이라도 시작되면 다행”이라는 조심스런 반응을 내놨다.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 “일본에 대한 배상 요구가 가능하다” 따위 일부 한국 언론들이 보인 ‘호들갑’과는 상당한 온도차를 보인 셈이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들을 살펴보자. ‘3·1운동시 피살자 명부’(630명),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의 명단을 담은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290명), ‘일정시 피징용(징병)자 명부’(22만9781명)다.

이 가운데 덩치가 큰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는 다른 두 문서에 견줘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이 문서의 ‘업그레이드본’으로 추정되는, 1967~1968년 작성된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28만5771명)를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견을 계기로 국내 보상이 급증할 것 같지도 않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한국의 국내법은 유족들의 신고제를 기초로 운영되고 있다. 이미 법 시행 뒤 5년 동안 9만5165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돼 동원 중 사망(1만5021건)하거나 행방불명(4063건)된 이들에게 1인당 2000만원씩 위로금이 지급됐다. 이미 신고를 할 만한 이들은 다 했을 테니 아마 추가 접수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유족들을 직접 찾아가 위로금을 지급할 순 있다. 그러나 이미 5250억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된 노무현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에 현 정부가 추가로 수조원을 쏟아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둘째는 3·1운동 명부다. 이 명부를 통해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3·1운동 순국자 수백명이 추가로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두 나라 정부는 1965년 6월 체결된 한일협정 2조에서 을사조약·병합조약 등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선언했다. 한국 정부는 이 조항을 병합조약은 “처음부터 무효”라고 해석해 식민지배는 ‘불법’, 일본은 “한국 정부가 성립된 1948년 10월 이후부터 무효”라고 봐 식민지배 자체는 ‘합법’이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3·1운동 순국자들에 대한 일본의 배상이 이뤄지려면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가 불법이었음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의한’ 행정권 집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식민지배의 법적 책임에 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이다. 한·일이 분리되며 서로가 상대에게 청구할 수 있는 재산의 대차 관계를 정리한 ‘청구권 논의’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얘기다. 결국 이는 자연스럽게 현재 한-일 관계의 기본틀인 ‘65년 체제’에 대한 재검토 논의와 연결되는데, 일본이 한국의 주장을 받아들일지, 아니 그보다 한국의 위정자들이 그런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결국 남은 것은 간토대지진의 명부다. 무려 290명의 명단이 나왔으니 정부의 행정시스템을 이용해 유족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지난 학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죄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는 그런 민간의 노력에도 별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사안을 위안부·원폭·사할린 등 세 가지로 좁힌 뒤 그 외엔 관심조차 두지 않으려는 평소 행태에 비춰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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