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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9 19:12 수정 : 2013.12.19 19:12

박현 워싱턴 특파원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이란 핵협상이 북한에 갖는 함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 안보참모들이 참석해서 흥미로웠다. 올해 초까지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맡았던 게리 세이모어는 두 나라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과는 3차례 협상에서 합의를 이뤘으나 파기됐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더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은 폐쇄경제 체제이고 중국이 보호를 하고 있어서 제재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추가적인 제재 도구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냈던 마이클 그린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세이모어는 1년 전만 해도 우리를 ‘미친 네오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 보니 이제 우리는 모두 존 볼턴이 된 것 같다.” 볼턴은 부시 행정부 시절 외교안보 노선에서 보수 강경파를 뜻하는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린 전 보좌관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폈으나 실패했고, 그래서 강경노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나 오바마 행정부나 대북정책의 차이는 거의 없다. 두 행정부 모두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가속화하고, 거의 전면적인 경제제재를 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비슷하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장성택 처형 사건을 보면서 자신들의 대북정책이 맞다고 스스로 확인하는 것 같다. 북한 체제는 구제불능이고 협상 대상으로는 가당치도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번 사태는 제재와 압박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 제재와 외교적 압박은 대상국의 교역·외교관계를 제약함으로써 해당 국가 지도층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의 경우 그 실효성 여부는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거나 지연시켰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장성택 처형 사건은 오히려 상황이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북한은 유일지도체제를 강화하면서 체제가 더 경직되고 있다. 둘째, 개혁·개방 추진 세력이 위축되고 있다. 셋째, 제재의 대상이 지도층이라고 하지만 경제난으로 북한 인민들이 더 고통받고 있다. 넷째, 사회개혁의 추동 세력인 중산층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제재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제재를 강화하고 싶으나 이를 실행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북한 경제는 폐쇄 체제이고 중국이 전면적 제재에 동참하는 것을 꺼리며 북한 내부에서 정권을 압박하는 시민사회의 힘이 부족하다. 제재 강화론은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다.

방법은 북한과의 협상 재개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두 명의 한반도 전문가가 최근 내놓은 안은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9·19 공동성명의 숨은 주역인 조지프 디트라니 전 비확산센터 소장은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우선 예비회담을 열어 북한의 의도를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일단 서로가 만나 협상이 가능한지를 타진해보자는 것이다. 5년 전 오바마 대선캠프의 한반도팀장이었던 프랭크 자누지 국제앰네스티 워싱턴사무소장은 북한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1970년대 동·서유럽 통합의 기반이 됐던 ‘헬싱키 프로세스’처럼 외교의 초점을 핵무기에서 사람으로 전환해 다차원적인 관여를 하자고 권고했다.

독자들은 물을 것이다. 이 문제에서 한국 정부는 어디에 있느냐고. 이명박 정부는 북한 조기붕괴론에 기대어 미국에 지속적으로 제재 강화를 주문했는데, 불행하게도 박근혜 정부도 지금 그 길을 따르고 있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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