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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09 18:36 수정 : 2014.01.09 18:36

박현 워싱턴 특파원

1971년 4월 초 어느 날 밤늦게 불면증에 시달리던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수면제를 먹고 “탁자 위에 털썩 엎어져서” 비몽사몽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며 외교부장에게 전화를 걸라고 지시했다.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수면제를 복용한 다음에 내리시는 명령도 유효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마오쩌둥은 대답했다. “물론, 유효하지. 한마디 한마디 모두 유효해. 당장 움직여. 너무 늦기 전에!”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책 <중국 이야기>에서 소개한 한 대목이다. 마오쩌둥이 일본에서 열린 국제 탁구대회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을 중국으로 초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핑퐁외교’가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그 이듬해 닉슨 대통령은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하게 된다.

갑자기 핑퐁외교 얘기를 꺼낸 것은 ‘코트의 악동’으로 불린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 때문이다. 동료 농구선수 6명을 이끌고 방북한 로드먼은 자신의 행보를 ‘농구외교’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다. 핑퐁외교가 20여년간 굳게 닫힌 ‘죽의 장막’을 걷어낸 것처럼 북한의 닫힌 문을 여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로드먼의 이런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빚더미에 앉은 로드먼이 돈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다거나, 그가 이끄는 은퇴한 ‘외인부대원’들 중에는 알코올중독자가 있다거나, 후원사가 도박회사라는 등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든다. 한마디로 농구외교를 외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북한 체제의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작은 시도들이 서로를 더 잘 알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의 방북에 찬성하는 쪽이다. 그러나 여기에 ‘농구외교’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대표선수 자격’ 문제 때문이 아니다.

미-중 탁구대표팀의 경기가 ‘핑퐁외교’가 된 배경에는 그 엄혹한 냉전시대에 화해를 모색하려는 미·중 지도자들의 전략적인 판단이 있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은 한 해 전부터 제3국을 통한 물밑 접촉으로 국교 정상화를 모색해 왔다. 마오쩌둥은 중-소 분쟁의 격화 속에 소련과의 전쟁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미국과 손잡는 카드를 선택했다. 닉슨은 베트남전의 와중에서도 장기적인 평화를 설계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싶어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이 중국을 장악했을 때 미국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그러나 두 지도자는 자신이 먼저 공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했고, 협상은 공전을 거듭했다. 수십년간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반목과 대립을 해오던 지도자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악수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벽을 허문 것이 바로 탁구였다.

그러나 지금 남북, 북-미 관계에서는 농구외교가 들어설 자리가 아예 없는 것 같다. 새해가 됐지만 한·미와 북한 지도자의 입에서는 한반도를 60여년의 대립과 반목에서 화해의 장으로 바꾸려는 큰 전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8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북한의 변화 유도’를 운운했다. 이 당국자는 6자회담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는 한·미가 이명박 정권 때처럼 또다시 근거 없는 ‘북한 조기붕괴론’에 기대 허송세월을 하며 북한의 핵능력만 키울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농구경기를 외교로 승화시키기는커녕 그 싹마저 자를 위험성이 크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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