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6 19:06
수정 : 2014.02.06 19:06
|
박현 워싱턴 특파원
|
미국은 로비의 나라다. 등록된 로비단체들은 의회의 입법이나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로비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수많은 로비단체들이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은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 위원회’(AIPAC·에이팩)라는 유대계 단체다. 회원 10만명에 상근 직원만 300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스라엘이 세워진 지 몇년 뒤인 1951년 설립된 이 단체의 모토는 미국-이스라엘 동맹 강화이지만 실제 목적은 이스라엘 국익을 보호하고 미국 내 유대계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미국의 직능단체들을 제치고 이 소수계 단체가 으뜸으로 꼽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해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에이팩 연례총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수도 한복판에 있는 컨벤션센터에는 1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연사로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등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이 나섰다.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참석했다.
화려한 연사와 참석 인원도 놀라웠지만 더 관심을 끈 것은 프로그램이었다. 사흘간 200개 이상의 세션이 진행됐다. 주제도 종교에서부터 이란 핵 문제 등 다양했다. 이란 핵 문제의 경우 강경한 이란 제재 법안을 만드는 게 당시 목표였다.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단계를 자세히 설명한 뒤, 각 회원이 지역구 의원들을 찾아가거나 편지를 통해 설득하도록 권유를 했다. 미국 전역의 회원들이 각 지역 단위에서 움직여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에이팩이 추진하는 법안은 초당적 지지를 받고, 만장일치 의결이 나오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물밑 작업이 작용한 결과다.
이런 조직적 움직임과 함께 중요한 것이 돈이다. 유대계는 미국의 금융을 장악했다고 할 정도로 자금력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이팩은 비영리단체여서 직접 선거자금 후원을 하면 위법이 되기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피한다. 에이팩이 정치인들의 성적을 매겨 발표를 하면 회원들이 이 성적순에 따라 정치자금을 낸다고 한다. 에이팩 총회에 연방의회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대이란 강경책에서 볼 수 있듯이 에이팩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선 찬성을 하지 않지만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방법론은 충분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미국엔 재미동포가 200만명 넘게 살고 있고,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미국 정치권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진 재미동포들의 정치적 힘이 강해지면 미국의 정책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다행히 몇년 전부터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신장 운동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2007년 연방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과 그 이후 위안부 기림비 설립 운동,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 법안 만들기 운동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재미동포들의 거주 밀집지역인 뉴욕·뉴저지(주도단체 시민참여센터)와 캘리포니아(가주한인포럼), 워싱턴·버지니아(미주 한인의 목소리) 지역에서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 재미동포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직이나 자금 측면에서 아직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위안부 결의안과 위안부 법안을 통과시킨 주역인 일본계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을 도우려는 운동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선거에서 재선에 적신호가 켜진 그를 후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미국 전역에서 시작됐다. ‘혼다 의원 살리기 운동’이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신장 운동에 새 장을 열기를 기대한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