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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06 19:04 수정 : 2014.03.09 10:43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지난 토요일 저녁. 근처 한국 치킨가게에 주문 전화를 했다. 점원은 “주문이 밀려서 지금부터 적어도 한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주문을 포기했다. 최근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인기 덕에 극에서 나온 ‘치맥’(치킨과 맥주)의 선풍적인 인기를 체감했다. 한창때보다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중국에서 ‘한류’는 여전히 뜨겁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 때는 7억명이 본다는 <춘제완후이>(춘절만회) 프로그램에 이민호씨가 등장해 출연자 가운데 최고의 시청률을 찍었다.

하지만 한편에선 한-중 간의 분위기를 깨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과 국가정보원 쪽의 중국 공문서 위조 의혹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화교 출신으로 탈북해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우성씨가 간첩 활동을 했다며 중국 당국에서 발급받은 그의 출입경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 문서가 모두 위조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문서 입수 과정과 관련해 국정원과 검찰의 수차례 모순되고 설득력 없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수사의 초점은 이제 ‘누가 공문서를 위조했느냐’ 쪽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은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공문서는 위조됐다”고 확인한 뒤 일절 말이 없다. 지난주 찾아간 지린성 허룽(화룡)시의 공안국 직원과 공증처 공무원도 취재진을 극도로 꺼렸다. 공안국 직원은 아예 눈길조차 피했고, 공증처 공무원은 길가까지 쫓아나와 “어서 여기서 떠나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앙정부 쪽에서 단단히 ‘함구령’을 내렸거나 자체 조사를 받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미 공문이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을 해 주고는 뒤론 입을 닫는 중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과연 중국은 자기 나라 안에서 외국인이 벌인 문서 위조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일까?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불쾌하지만 사건이 확대되는 것은 꺼릴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지난해 자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일본과 최악의 관계다.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악마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다. 공문서 위조 사건이 커져 전선이 두개로 확대되는 것은 중국의 상투적인 표현대로 ‘국익’에 이로울 것이 없다. 심히 불쾌하지만 지금 국면에서는 공론화를 자제하겠다는 게 중국의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중국의 태도와 달리 이번 공문서 위조 사건은 한-중 신뢰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시켰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동북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 사회에도 강한 두려움을 던졌다. 옌지(연길)에서 만난 한 조선족은 사건을 알고 있다며 “이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말했다. 북한에 살았고 지인들이 여전히 북한에 있다고 한 그는 넌더리를 쳤다. “여기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다 말투도 부드럽고 참 인정 많고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중국에선 한국 드라마나 복장, 이런 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저도 조선족인지라 주변 사람들에게 늘 ‘아 정말 내 살아생전에 꼭 한국에는 가볼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젠 어디 무서워서 한국에 갈 수나 있겠습니까. 덜컥 잡아가지 않을까 무섭습니다. 특히 저처럼 북한에 연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간첩으로 몰릴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제 한국 가겠다는 생각은 아예 싹 접었습니다.”

중국에는 잘못에 따른 결과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의 ‘허우궈쯔쩌’(後果自責)란 말이 있다. 공문서 조작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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