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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7 19:04 수정 : 2014.03.27 22:03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베이징엔 다시 짙은 스모그가 몰아닥쳤다. 요 며칠 바람이 잠잠하다 싶더니 어김없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다는 점, 사람의 의욕을 여지없이 꺾어놓는다는 점에서 스모그는 유령을 닮았다.

최근 중국 사회에서는 스모그 말고도 또 하나의 유령이 엄습한 듯하다. 바로 테러 후유증이다. 실종된 지 3주가 지나도록 흔적도 없는 말레이시아 여객기 사건에 중국은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154명의 자국민이 타고 있었다는 점에서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뭔가 쫓기고 넘친다는 감이 없지 않다.

사건 발생 직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탑승자 명단에 있던 위구르족 화가의 이름을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냈다. 지지부진한 실종 수사가 이어지던 지난 18일엔 황후이캉 말레이시아 주재 중국대사가 “실종 여객기에 탑승한 중국인의 신분을 전부 조사했지만 이들이 항공기 훼손이나 납치에 관련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했다. 적어도 이번 사건은 분리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는 신장 위구르족의 소행은 아니라고 일찌감치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물론 리커창 총리까지 나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역정에 가까운 독촉을 하고 나선 것도, 중국인을 노린 테러의 가능성이 개운하게 가시지 않은 데 대한 초초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보다 불과 일주일 전인 1일 일어난 윈난성 쿤밍역 테러에 대한 대응도 비슷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일어난 전대미문의 참혹한 테러에 당국은 서둘러 사건을 봉합하기 바빴다. 어떻게 불과 20여분 만에 위구르족 테러분자들이 총이나 폭탄도 아닌 수박을 자르는 칼로 역 광장에서 17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살상했는지, 윈난성 성도의 중심인 쿤밍역에 분명히 있었을 공안은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애초 외국으로 나가려고 했던 이들이 왜 쿤밍역에서 무차별 살상을 벌였는지 등에 관한 의문점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또 “테러범들이 10명을 넘는다”는 일부 목격자의 진술과 달리, 사건 발생 단 이틀 만에 8명(여성 2명 포함)의 용의자 ‘전원’을 사살하거나 검거했다고 밝혔다. 특수경찰 저격수 단 1명이 혼자 4명의 테러분자를 처치했다는 액션영화 같은 발표 역시 믿기 어렵다. 불안감은 가시지 않아서, 보름여 뒤에도 청두와 광저우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뜬소문이 퍼져 시민들이 대피하는 일시적 ‘공황’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 중국인 친구는 “관영 언론의 발표를 전혀 믿을 수 없다”며 “양회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고, 뒤숭숭한 여론을 잠재우려고 당국이 일찌감치 사건을 정리해버린 것”이라고 불신감을 나타냈다.

테러는 사실 중국에는 낯선 ‘공포’다. 적어도 지난해 10월 위구르족 일가족의 천안문 차량 폭발 사고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전의 무력충돌은 서쪽 끝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안으로 한정됐다. 하지만 천안문 차량 폭발 사고와 쿤밍역 테러는 모두 지역적인 범위를 벗어났다. 미국과 함께 ‘G2’로 떠오른 중국은 그만큼 주목도 높은 테러의 대상으로 떠오른 셈이다.

중국은 테러에 철저한 응징과 철권통치를 처방으로 내놨다. 하지만 불평등과 억압, 차별을 그대로 둔 채 테러가 근절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테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이민족 차별과 강압통치라는 모순과 악순환부터 ‘발본색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으면 ‘허둥대는 대국’의 모습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뵌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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