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0 19:07
수정 : 2014.04.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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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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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구촌을 가장 바쁘게 누비고 다니는 사람은 아마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아닐까 싶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이란 핵, 시리아 내전에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벌어져 한달의 3분의 2는 대개 외국에서 보낸다. 지난달만 해도 국무부 출근 날짜는 일주일뿐이었다.
지난해 2월 입각 이후 케리 장관의 외국 순방 일정을 보면 중동·유럽 지역에 치우쳐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중동은 지금까지 16차례나 방문했다. 반면 동북아는 단 두차례에 그쳤다. 그를 ‘중동 담당 장관’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미국의 외교 사령탑인 국무장관의 동선이 이런 상황이니 오바마 행정부의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가 만무하다. 군사력 증강만 있고 외교는 사실상 방기된 상태다. 동북아에 긴장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 일본의 우경화 탓도 있지만 미국의 이런 군사중심주의적 동북아 정책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법 찾기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오히려 북핵 문제를 중국의 부상에 대비한 군사력 증강과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강화의 빌미로 삼고 있다. 한반도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된 형국이다.
미국의 이런 한반도 외교 실종은 단순히 케리 장관의 문제가 아니다. 제아무리 미국 국무장관이라 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를 받거나 그의 의중을 살펴 움직이기 마련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관심사는 지난해 9월 유엔 기조연설에서 40분에 걸친 연설의 대부분을 중동 정책에 할애한 것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북핵은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올해 1월 새해 국정연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한반도 정책 라인이 대북 강경파로 짜여 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유엔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를 주도한 인물이고, 시드니 사일러 한반도 담당 보좌관은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매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실패작으로 평가를 내리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 북한은 나날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이미 지난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은 외부세계와 단절돼 살고 있다.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새로운 네오콘(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보수강경파) 같은 느낌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관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도 주요 외교정책은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야 비로소 실행에 옮겨지는 구조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렇게 백악관의 대북 강경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북핵 문제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서서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할 방법도 없다.
지구상에서 그에게 접근해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의 시각에서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한 사람밖에 없다. 바로 한국의 대통령이다. 나는 1년 전 이맘때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슷한 주제의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변화가 먼저’라는 미국의 기존 정책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남은 임기나 11월 중간선거 판세 등을 고려하면 이번 정상회담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도모할 거의 마지막 기회다.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대화를 통한 해법 찾기’에 합의하길 기대한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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