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7 18:51
수정 : 2014.04.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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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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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연초부터 내건 ‘통일 대박론’이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정점으로 주춤하고 있다. 상대인 북한은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가능성을 거론하더니 급기야 국방위원회가 이를 흡수통일 논리라며 공식 거부했다.
한반도 통일의 중요 관련국이자 이해 당사자인 중국은 통일 대박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여러 중국 교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중국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통일 한반도는 중국에 도전이라기보다는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이 찬성하는 통일의 조건도 분명한 듯했다. 통일이라는 명제엔 반대하지 않았지만 중국 쪽 학자들은 통일 뒤 한반도가 어떤 형태의 모습일 것인가에 더 방점을 찍고 있었다.
이들은 통일 한반도가 지나치게 미국과 가까운 모습이라면 곤란하다고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통일 뒤 주한미군의 위상에 관해 우려했다. 한 중진 학자는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이른 미군의 거침없는 북진이 중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했다”고 말했다. 중국으로선 예나 지금이나 미국 또는 미군과 직접 접경지대에 마주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한 소장 학자는 아예 통일 뒤 한반도가 “스위스처럼 중립국이 되는 게 중국에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결국 뒤집어 풀이하면 통일 한반도가 지금처럼 미국의 동맹국의 모습이라면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 없고, 그러면 통일에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중국의 또다른 한반도 통일 조건은 안정이다. 중국은 공표한 대로 2020년까지 ‘샤오캉(소강)사회’(인민 대부분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사회) 건설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주변의 불안정은 샤오캉사회 건설이나 지속적인 발전과는 상극이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혼란 탓에 1300㎞에 달하는 북-중 접경으로 대량의 난민이 밀어닥치거나 무장한 군인들이 난입한다면 중국으로선 ‘재앙’에 가깝다. 혼란스런 한반도 통일은 중국엔 결코 대박이 아닌 셈이다. 중국은 한국의 보수파들이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북한 붕괴’에 따른 통일엔 극히 부정적이다. 중국이 6자회담을 강조하는 것도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북핵 문제를 점진적으로 풀자는 뜻이 담긴 것이다.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남북 양쪽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이란 말의 이면엔 이렇게 복잡한 중국의 전제조건들이 담겨 있는 셈이다. 자주적이지 않고, 혼란스러운 통일은 중국 입장에선 ‘아니올시다’라는 조건 말이다.
무척이나 낯설지만 통일 한반도의 ‘복수’ 가능성을 말하는 학자도 있었다. 그는 “과거 한국전쟁으로 인한 중국과의 악연, 식민지배로 말미암은 일본과의 역사를 생각하면 국력이 커질 통일 한반도가 앙갚음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숱한 외세의 침략에 방어를 했지 우리가 먼저 침략한 역사는 없다고 배운 한국인으로선 기우라고 여겨질 만큼 생소한 지적이다. 그러나 주변국의 우려는 통일의 현실적 장애물이다. 특히나 중국을 배제한 통일 구상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과거 독일도 통일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쉼 없이 설득했다. 두 나라는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이웃 국가의 통일이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30여년을 이어온 개혁개방이 ‘심수구’(深水區·깊은 물)에 이르렀다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국에 통일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통일=대박’이란 공식을 주변국에도 설득시킬 논리의 개발은 아무리 정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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