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19:04
수정 : 2014.05.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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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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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슬픔과 분노를 던진 세월호 사건을 보면 청와대와 정부라는 배가 세월호와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고 발생 만 하루가 지난 뒤 현장을 찾은 대통령은 “구조에 1분 1초가 급하다”고 했지만, 이후 대응은 딴판이었다. 정부는 수습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무능의 극치를 드러냈다. 사태가 커지자 대통령은 “살인과도 같은 행태를 했다”며 선장에게 무한 책임을 돌리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잠시 본분을 잊은 듯, 야당 당수 시절을 연상케 한 말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씻지 못할 죄를 지은 선장이긴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간단히 국민의 명단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외신들은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있는지” 따져 짚었다. 국정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사과를, 그것도 한다리 건너 ‘캤다 카더라’는 식으로 듣기까지는 꼬박 13일이 걸렸다. 남 탓에서 내 탓으로 느끼기까지의 시차였던 셈이다. 성의와 진심을 느끼지 못한 민심은 급기야 ‘조문 연출’ 논란까지 옮아갔다.
총리는 어떤가. 내내 사태 수습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유가족에게 구조 아이디어를 구했던 그는 “아이들의 주검을 보고 유가족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는 말에 일정 핑계를 대며 머뭇거렸다. 무능은 차치하고라도 유가족의 옆에 함께 있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모습 어디에도 공감하려는 노력을 찾기 어려웠다. 배와 승객을 버린 선장과 선원들처럼 대한민국호의 선장과 선원들 역시 다급함에 처하자 책임과 의무에서 발을 빼기 바빴다. 세월호는 지도자의 그릇과 도량을 만천하에 까발려 버렸다.
1년 전 중국 쓰촨성 루산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2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1300여명이 다쳤다. 취임 한달여 만에 대형 재난에 직면한 시진핑-리커창 체제는 민심을 잃지는 않았다. 리커창 총리는 전용기를 타고 지진 발생 5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일회용 죽과 짠지로 텐트에서 끼니를 때우며 구조 작업을 지휘했다. 일부에서 ‘쇼’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민심은 이를 못마땅히 여기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신속하게 1만7000여명의 병력을 현장에 투입하라고 명령했다. 지진 발생 직후 “시-리 체제가 집권 초기 시험대에 올랐다”고 주목했던 외신들은 “5년 전 쓰촨성 원촨 대지진 때보다 중국 지도부가 향상된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줬다”며 비교적 후한 평가를 했다.
외신들은 세월호 사고 초기 “박근혜 정부가 위기관리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평가는 중국 지도부와는 정반대였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무능은 제쳐두고라도 정부가 사망, 실종자 가족의 청와대 항의 방문 등 집회를 엄격히 단속한 것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장애에 부닥쳤다”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 지도부에 재난은 새 정부의 신뢰를 높이는 반전의 기회가 됐지만, 청와대와 정부에 재난은 무능의 끝을 확인시키는 ‘재앙’으로 귀결된 셈이다.
대통령은 부랴부랴 국가안전처 신설을 대책으로 내놨지만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은 여론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는 듯하다. 국민의 귀엔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의 발언은 국가안전위원회의 안보 개념에 생태와 환경, 자원까지 포괄한 중국 지도부의 인식보다도 한참 뒤떨어졌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중국을 안전 후진국이라고 낮춰봤지만 그건 얄팍한 자만심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중국의 지도자보다 민심을 보듬는 데 서툰 지도자의 모습은 서글픔을 더욱 깊게 한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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