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19 18:27
수정 : 2014.06.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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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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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가 껄끄러워질수록 한국의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미-중 관계는 냉랭하다.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계기가 됐다. 그는 순방 내내 영토, 역사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과 필리핀한테 굳건한 동맹 수호를 약속했다. 반면 중국에는 쉼 없이 견제구를 던졌다. 그보다 앞서 중국을 찾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일본 편을 들다가 중국군 고위 장성에게 “당신 말을 듣기 불쾌하다”는 노골적인 핀잔까지 들었다.
두 나라 사이의 해묵은 사이버해킹 논란도 불거졌다. 미국 법무부는 해킹 혐의로 중국 현역 장교 5명을 기소했다. 중국 쪽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곧바로 국유기업들에 보안을 강조하며 미국계 컨설팅회사에 자문을 맡기지 말라고 단속령을 내렸다. 급기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상하이에서 “제3자를 겨냥한 군사동맹 강화는 지역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며 미국에 직격탄을 쐈다.
미-중 대립은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한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겸 6자회담 수석대표는 “중국 쪽과 상당히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솔직한 의견 교환이란 말은 양쪽이 상당한 견해차를 확인했을 때 쓰는 외교적 수사다. 그의 방중에 앞서 한·미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처가 있기 전엔 회담을 위한 대화는 않겠다”고 합의했다. 핵 병진 노선을 명기한 북한 헌법을 개정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더 ‘엄격한 조건’도 흘러나왔다. ‘문턱’(전제조건)을 낮추고, 한-미 군사훈련을 줄여서 우선 6자회담을 열고 보자는 중국 쪽과는 해법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셈이다. ‘솔직한 대화’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 뒤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지난 연말 방중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도 당시 시진핑 주석과 회견 뒤 “솔직한 대화를 했다”고 했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THAAD) 한반도 배치 문제도 불거졌다. 미국은 한국이 난색을 표하고 있음에도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하라고 집요하게 압박한다. 중국은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다. 사드 체계에 포함되는 고성능 엑스(X)밴드 레이더의 감시 범위에 중국 내륙이 포함되는 탓이다. <신화통신>은 “한국이 (미국의) 엠디 유혹에 넘어가면 중국과의 관계가 희생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중국의 굴기 사이에서 한국은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물음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은 위태롭게 평균대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7월 초 방한한다. 두 나라 정상 모두 취임 초기 호감 속에 만났던 1년여 전 베이징 회동 때와는 주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게다가 한국엔 ‘문창극’이란 돌발 변수도 있다. 시 주석의 방한 무렵이면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돼 있을 테지만 그는 과거 교회 강연에서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뤄지면 우리나라 통일과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뤄진다”고 했다. 또 “미국과 동맹의 끈을 놓는다면 중국과 동맹을 할 것인가”라고도 했다고 한다. 한국 외교의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는 ‘확신’ 발언이다. 중국으로선 내정 간섭이자 자신들을 적으로 인식한다고 여길 수 있다.
시 주석이 관례를 깨고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찾는다는 데에만 의미를 부여하기엔 상황이 냉정해 보인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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