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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6 18:29 수정 : 2014.06.26 18:29

길윤형 도쿄 특파원

지난 20일 공개된 ‘고노 담화’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검증 보고서를 읽고, 며칠 동안 답답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담화의 의미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의도야 그렇다 쳐도, 보고서에 묘사된 한국 정부의 당시 대응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가 이렇게 꼬일 대로 꼬여 한-일 관계를 파국의 지경으로 몰아넣게 된 데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도 상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란 무엇일까. 1993년 8월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통해 인정한 바와 같이 “일본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남긴 문제”이다. 한국 정부가 이 말의 뜻을 깊이 곱씹어 향후 대책에 나섰다면 아마도 이 문제의 처리는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담화 발표 이후 외교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1993~1994년 무렵부터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인식을 일본 쪽에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것은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하나가 됐던 한·일이 다시 분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의 대차관계를 정리한 청구권에 불과했다. 남편이 폭력을 행사해 부인과 이혼을 한다면, 부부간 재산분할과 더불어 남편의 폭력에 대한 위자료 지급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 정부는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구별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일본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아시아 여성기금’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부는 비겁하기까지 했다. 1995년 6월 일본 정부가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놓은 뒤 여론이 악화되자 입장을 뒤바꾸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본엔 “겉으로 일본 정부와 협력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면 아래서는 협력하고 싶다”(보고서 16쪽) “(아시아 여성기금이) 국가보상과 같이 보이도록 하는 건 불가능할까”(17쪽) 따위의 말들을 전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관련 단체의 핑계를 대며 납작 엎드리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원했던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돼 2005년 1월 귀중한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 이 판결 이후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을 수정하게 된다. 1991년 위안부 문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지 14년 만이었다. 그런데도 일본을 상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별다른 외교적 노력을 하지 않다가,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위헌’이라는 경고도 받는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좌절한 뒤 독도 상륙으로 화풀이를 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바와 같다. 이후 한-일 관계는 급랭하고, 아베 총리의 취임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현재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지난 20년의 ‘외교 참사’는 정부가 대일 외교에서 정확한 원칙에 기초해 판단을 내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우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한-일 간에 국장급 협의가 열리고 있지만 아베 정권의 현실 인식이 저렇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꼬여 답도 안 나오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렇게 말해야 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진심으로 답답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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