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8:25
수정 : 2014.07.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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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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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노라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변화가 빠르다. 일본의 고노 담화 뒤집기 시도와 집단적 자위권 허용 결정, 북한을 건너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남한 방문, 그리고 북-일 교섭과 일본의 일부 제재 해제 결정 등등. 마치 동북아의 심연에서 마그마가 꿈틀대면서 곳곳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것 같다.
동북아 지형의 이런 거대한 흔들림의 근원은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다. 중국은 경제력뿐 아니라 군사력 측면에서도 이미 주요 2개국(G2)이 됐다. 워싱턴의 떠오르는 전략가 로버트 캐플런은 저서 <아시아의 도가니>에서 “중국은 동아시아 해역에서 잠수함은 2020년께, 함정은 2020년대 말에 미국을 앞설 것”이라며 미국의 해양패권이 도전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은 <전략적 확신과 결심>에서 미국은 중동·동아시아 2개의 전장을, 중국은 동아시아 1개의 전장을 가상하고 군사전략을 짜는 만큼 미·중의 군사지출은 2 대 1이 되면 대등한 수준이 된다고 말한다. 올해 미국의 군사예산은 5700억달러, 중국은 1400억달러 수준이다. 미국 일각에선 중국의 국방비가 실제로는 200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추정한다. 미·중이 군사력 면에서 대등한 수준이 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일본의 군사예산은 450억달러로 중국에 한참 못 미친다.
미·일의 최근 움직임은 이에 선제대응하려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란 이름으로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강화하면서 중국을 견제·포위하고 나섰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의 아베 정부는 한편으론 집단적 자위권과 미사일방어로 미국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역사수정주의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보통국가화’라는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려는 발걸음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한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지만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체제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일 수 있다. 강대국들의 이런 전략적 행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냉엄한 국익 추구다.
그런데 정작 동북아의 한복판에 있는 남북한은 원대한 전략을 갖고 치열하게 국익을 추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과도한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고자 ‘탈중국’을 시도하면서 한·미에 외교적 손길을 내밀었으나 완고한 벽에 부딪쳤다. 그러자 일본과 러시아에 손을 내밀어 외교적 고립을 만회하고자 하나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외교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대국 틈새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라는 그럴듯한 정책을 내세웠으나 장롱 속에 처박아 놓은 지 오래다. 이렇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들에 대한 약속 위반이다.
이럴 때일수록 미·중 간 균형외교와 남북한 평화공존이 우리나라 동북아 외교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미·중 간 균형외교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남북한 평화공존이라는 목표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한 고립화 시도에 대한 완강한 거부의 몸짓일 수 있다. 미국이 대화 대신 압박에만 몰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방치해놓기보다는 우리가 보듬고 나가야 한다. 시 주석 방한을 북한과의 대화 재개의 계기로 만들길 기대한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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