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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10 18:53 수정 : 2014.07.10 18:53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대일본 역사 공세를 지켜보면 집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올해 들어 중국은 일제 군국주의 침략을 비판하는 행사를 매달 빠짐없이 진행하고 있다. 1월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했고, 외신기자들을 랴오닝성 선양으로 초청해 만주사변 기념관 취재를 주선했다. 외신기자 초청 행사는 2월 난징 대학살 기념관과 4월 하얼빈 731부대로 이어졌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는 난징 대학살 발발일인 12월13일을 국가 추모일로 제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한국 방문에서 임진왜란을 언급하면서 한국과 중국이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 역사를 거론했다. 방한 당일 중국 정부의 문서, 사료 관리 기관인 중앙당안국은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부녀자를 납치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일본 전범의 자백서를 공개했다. 이는 한달 보름 동안 매일 발표될 예정이다. 급기야 7일엔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루거우차오(노구교) 사건 발발 77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역사를 왜곡, 부정하고 미화하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연설했다. “아베 정권하에선 일본과의 관계는 접어뒀다”는 한 외교관의 말처럼 중국은 일본에 “끝까지 가보자”는 식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왜일까. 중국의 집요함엔 어떤 셈법이 있는 것일까?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의 역사 역주행과 극우 군국주의화는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으로 어느 나라보다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침략자이자 전범국 일본과 벌이는 논쟁은 도덕적인 면에서나 국제 정세상으로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당장 반일 감정이 선명한 한국을 끌어당기는 데 이만한 호재는 없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에서 보듯 한국에서 ‘친일’은 ‘친북’만큼이나 강력한 주술이다. 중국을 압박하는 한·미·일 공조를 깰 좋은 소재인 셈이다. 이는 일본의 침략 피해를 당한 동남아 국가들한테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날개를 달아주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찬성하고 나선 미국을 동아시아 역사에 무지하고, 중국 견제라는 자국의 이익 지키기에만 급급한 나라로 국제사회에 부각시킬 수 있는 부수 효과도 있다. 나아가 일본을 도덕적으로 허물어뜨림으로써 중국이 아시아의 명실상부한 맹주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중국 국내적으로도 손해 볼 게 없다. 항일은 중국에서도 한국만큼 내부를 일치단결시키는 카드다. 공산당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관료 부패, 차별 철폐와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위구르족의 잇따른 테러 등 집권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 항일은 내부 모순을 사그라지게 하는 진통제다. 시 주석이 루거우차오 사건 77주년 기념행사에서 “중국 공산당은 민족 정의를 모아 민족 구원의 역사적 중임을 맡아 항일민족통일전선을 호소했고 결국 일본 침략자를 몰아냈다”고 한 것은 국내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대대적인 부패 척결과 항일 전선은 누구도 반대할 명분이 없는 대의이자 집권 강화의 묘약인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공산당은 집권 과정에서 항일의 덕을 톡톡히 봤다.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서 장엄하게 묘사됐지만 대장정은 초기 참가자의 80~90%가 숨진 비참한 공산당의 퇴각의 기록이었다. 항일 국공합작 전까지는 국민당에 의해 궤멸 직전까지 갔다. 저명한 중국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침략이 중국의 정세를 완전히 바꿔놨다”고 평한다. 일본의 침략이 공산당을 기사회생시켰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중국의 ‘항일 요법’이 쉬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근거들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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