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30 18:42
수정 : 2014.10.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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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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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면 스트레스고 숨을 쉬면 혐(嫌)이다.
며칠 전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브리핑에 참석하러 갔다가 정문 앞에서 동료 특파원을 만났다. 그에게 “눈을 뜨면 스트레스”라고 아침 인사를 건네자, “길윤형씨도 그래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린 앞뒤로 선 채 걸으며 낄낄 웃었다. 그러고선 그 일을 잊었는데 지난 28일 정의화 국회의장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 뒤 돌아가는 길에 그때 일이 화제에 올랐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돼 위안이 됐다”는 얘기였다. 우린 다시 나란히 선 채 걸으며 다시 한번 낄낄 웃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경색된 지 3년이 되어간다. 그 탓이겠지만, 도쿄 특파원들의 하루하루 생활은 괴롭기 짝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을 읽을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일본 주요 정치인이 출연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다 암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며, 책을 사러 서점에 갈 때마다 ‘혐한’을 조장하는 책들로 마음에 멍이 든다. 현재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살펴볼 때, 이런 흐름을 단숨에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2009년쯤 영화 잡지 <씨네21>에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해운대>에 관해 짧은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난다. 부산을 덮친 지진해일(쓰나미)은 해운대의 마천루를 덮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긴다. 그러나 영화가 잊고 있는 대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부산을 뒤덮은 지진해일의 반대편에 살고 있을 쓰시마, 이키, 후쿠오카 사람들이었다. 부산 사람들이 거대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영화를 만들며 그 반대편에서 똑같은 고통을 받게 될 이웃들에 대해 눈감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얘길 적었다.
지난 8월이다. 그 칼럼을 쓴 지 5년이 지나 한국인 절도범 일당이 쓰시마의 절과 신사에서 훔쳐낸 불상을 돌려주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쓰시마를 방문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배를 타고 두시간쯤 설핏 잠에 들었더니 어느새 이즈하라항이었다. 그곳에서 한·일 두 나라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백년을 생존해온 섬사람들의 얘길 들었다. 특히 고려시대 관세음보살좌상을 도둑맞은 관음사의 본사인 서산사(西山寺·세이잔지)엔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참여했던 학봉 김성일(1538~1593)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고, 쓰시마에서 한-일 사이의 외교를 담당하던 승려 겐소(?~1612)의 목상도 마련돼 있었다. 이는 아름다운 교류의 역사일까. 아니다. 김성일은 귀국 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인물이고, 겐소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대의 침략 길에 길잡이를 한 인물이다. 쓰시마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섬에서 느낀 것은 교류란 본질적으로 양면적이라는 것과 역사에 대한 해석은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다.
쓰시마인들이, 그리고 일본인들이 기억하는 역사는 한국인들의 집단 기억과 일치하지 않는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은 한국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정신이다. <비정상회담>이라는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에 ‘기미가요’가 흘러나왔다는 이유로 제작진이 거듭 사과를 해야 하는 한국의 사정을 떠올려 본다. 아마, 서울에 근무하고 있는 일본 특파원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은 아닐까. 텔레비전을 켜면 쏟아지는 뉴스들로 안 그래도 숨쉬는 순간순간이 모두 혐인데 한국도 일본도 서로에게 너무 각박하게 하지 말자.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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