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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3 18:38 수정 : 2014.11.13 18:38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며칠 전 중국인 지인이 책을 사왔다. 평소 타오바오 등 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책을 주문해 받던 그였다. 그런데 버스로 서너 정류장이나 떨어진 신화서점에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까닭을 물었다. 그는 “베이징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탓에 배송이 멈춰 책을 주문하면 받는 게 하세월이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11월 들어 베이징이 평소 베이징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일과 채소를 사는 시장 옆의 15호선 지하철 공사장 앞엔 “아펙 기간 동안 공사를 잠시 중단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출퇴근 시간 꽉 막히곤 했던 도로들은 뻥 뚫렸다. 5부제였던 차량 운행 제한이 홀짝제로 바뀐 탓이다. 보통 40분 이상 걸리던 베이징 동북부 왕징에서 서북부 베이징대까지도 고작 15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신문들은 “시내 차량들의 운행 속도가 평균 시속 47㎞를 넘었고 정체도 70% 이상이 해소됐다”고 보도한다. 주변의 한 학부모는 “아이 볼 사람이 없어 난감하다”고 했다. 각급 학교 역시 아펙 기간인 7~12일에 일제히 휴교했기 때문이다. 베이징시를 비롯해 허베이, 산둥성 등 인근 공장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베이징 외곽의 화장장도 일시 휴업을 했고, 심지어 회의가 열린 베이징 외곽 옌치 호수 부근에서는 취사용 땔감 사용도 금지했다. 휴대전화로는 “아펙 성공을 위해 선진적이고 문명적인 베이징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드린다”는 문자가 여러 차례 날아들었다.

10월의 베이징은 이렇지 않았다. 딴판이었다. 10월에만 3차례 미세먼지 농도 400을 웃도는 스모그가 온 도시를 휘감았다. 말 그대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주변의 익숙한 건물들은 마법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치원들은 실외에서 열려던 가을 운동회를 40여평짜리 실내 강당에서 치렀다. 강원도 봉평의 가을 메밀밭을 보고 “굵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하다”고 했던 작가 이효석이 10월 베이징을 봤다면 “고운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하다”고 했을 법하다.

11월 베이징의 변신은 오직 파란 하늘을 위한 대가다. 2008년 올림픽 이후 6년 만에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행사를 치르는 중국식 손님맞이다. 극진함이 효과를 냈는지 8~11일 베이징 등 수도권 일대를 스모그가 덮을 것이란 일기예보마저 빗나갔다. 덕분에 유례없는 파란 하늘과 휘영청한 달빛을 누렸지만 한켠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늘 베이징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단 말인가. 베이징의 푸른 하늘은 중국이 사막이나 대도시의 가뭄이나 오염을 해결하려고 실시하곤 한다는 인공강우처럼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부자연스러움 자체다. 베이징 시민들 사이에서는 ‘아오윈(올림픽)란(奧運藍)’에 이어 ‘아펙 란’(APEC藍)이라는 신조어가 나돌았다. 아펙이 ‘선사’한 파란 하늘이란 뜻이다. 공장을 멈추고, 학교를 휴교시키고, 차량을 통제해 얻어내는 파란 하늘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시진핑 주석조차 “아펙란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 할 정도다. 아펙이 일주일가량이었기에 망정이지 더 길었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아펙이 인민들의 협조로 무사히 끝난 지금 문득 손님들이 떠난 아펙 이후가 두려워진다. 당장 15일부터는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의 난방이 일제히 시작된다. 난방은 스모그의 주범인 석탄이 주원료다. 공장들은 일주일여의 휴업을 만회하느라 맹가동할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3분기 성장률은 목표치인 7.5%에 0.2%포인트나 못미친 7.3%를 기록한 터다. 아직까지 하늘은 파랗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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