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0 18:37
수정 : 2014.11.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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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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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씨, 오키나와 미군기지 운동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이 어딘지 알아?”
오키나와 지사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밤. 오키나와의 중심도시 나하의 한 이자카야(선술집)에서 도미야마 마사히로(60) 오키나와민중연대 대표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 2006년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무렵 한겨레신문사의 주간지 <한겨레21>은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평택 대추리를 배경으로 연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5년차 기자이던 나는 매주 대추리에 내려가 ‘들이 운다’라는 제목으로 국가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하루하루 지쳐가던 주민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평온하던 마을이 기지 확장에 대한 찬반으로 갈가리 찢기고, 끝내 마을과 농토를 포기할 수 없었던 주민들은 결사항전 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도미야마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오키나와를 대표해 응원차 두어번 대추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뭔데요?”
그의 잔에 오키나와의 전통술 ‘아와모리’를 따르며 물었다. 돌아온 답이 뜻밖이었다.
“그건 야마토(일본 본토) 사람들과의 연대야. 본토 사람들과는 얘기가 잘 안 통해. 잘 믿을 수가 없지. 같은 일본인데도 그렇다니 잘 이해가 안 되지? 그런데 실제 그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오키나와에선 주일 미 해병대의 MV-22(오스프리) 등이 배치된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문제를 놓고 난리법석인 치열한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도쿄를 중심으로 한 거대 언론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일본 진보 진영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정도가 두어 차례 선거의 쟁점을 다루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본토의 무관심 속에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주일미군의 74%가 주둔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오키나와만의 문제일까. 8년 전 평택 황새울 논두렁에 걸터앉아 가슴을 치던 대추리 농민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도 당시 한국 사회가 대추리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덜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대추리 투쟁에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규정해온 여러 쟁점이 섞여 있었다. 첫째는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국익과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 미국의 요구를 어떻게 완화시켜 나갈까 하는 자주성의 문제, 둘째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해온 전근대적 갈등 해소 시스템의 문제, 셋째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시골 노인들의 몸에 전가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일본이 오키나와에 그러했듯 이를 평택 대추리·도두리에 사는 소수의 노인들의 육신에 전가하는 손쉬운 길을 택하고 만다.
그래서 평택을 버린 대한민국은 행복해졌을까. 최근 흘러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 숨쉬기도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로 예정됐던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해 대미 추종의 길을 택했고, 우리 국익엔 치명적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를 받아들이려 하는 중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평택 농민들처럼 고립된 채 가슴을 치며 타협안을 수용했는데, 이들에 대한 일베와 서북청년단이란 무리의 파렴치한 공격은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가 들게 한다.
그래도 오키나와 민중들은 지난 16일 선거에서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새로운 지사를 선출해 저항의 작은 교두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평택을, 용산을, 밀양을 그리고 세월호를 끝내 외면한 한국 사회에 미래는 있는 것일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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