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7 18:43
수정 : 2014.11.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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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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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북한 때리기가 한창이다. 북한 당국이 이를 인권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권고에서부터, 우리 국회에서도 북한인권법을 빨리 통과시켜 대북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과연 이것이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인지 실효성 측면을 얘기하고 싶다.
어느 나라나 실제 인권이 개선되려면 결국은 크게 두가지 경로를 거칠 것이다. 하나는 해당 국가 지도층이 잘못을 깨닫고 이를 시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판적 시민사회의 영향력을 키움으로써 지도층이 시정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번 결의안을 추진한 주체들은 국제사회의 이런 압박이 북한 지도층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북한 내 시민사회의 영향력 강화에 힘이 돼 주기를 바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바람은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먼저 북한 지도층은 이를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실 이는 북한의 기존 행동을 봐온 사람들이라면 예상하지 못했던 바도 아니다. 이는 오히려 단기적으론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킴으로써 북한 내 인권 상황 개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둘째로, 북한 내 비판적 시민사회를 강화시킬 수 있을까? 80년대 대학을 다닌 나로서는 국제사회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을 마치 단비처럼 받아들였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분명 국제사회의 비판과 압박은 인권이 열악한 국가의 시민사회에 큰 힘이 되는 것은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다만, 철저한 군사·경찰국가로서 비판적 시민사회가 의미있게 형성돼 있지 않은 북한에 이런 방식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경로를 결의안 추진 세력의 일부에선 상정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창피 주기’와 압박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 ‘정권 교체’를 위한 명분을 축적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반북운동 단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북한 최고지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카드의 이면에는 이런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명분은 훗날 북한에 대한 군사개입론에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라는 방식이 해당국의 인권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라크는 인권이 개선되기는커녕 또 다른 전쟁에 휩싸인 것은 물론 중동 전체를 혼돈에 빠뜨려 인권이 더 유린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정권 교체를 시도하다가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 (솔직히 북한 인권 상황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돼야 한다면, 거짓 정보를 근거로 한 조지 부시 전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도 국제형사재판소가 규정하는 4대 중대범죄인 ‘전쟁 범죄’ 또는 ‘공격 범죄’ 혐의로 여기에 회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정치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북한 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북한과 직접 관여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북한과 대화도 하지 않고, 교류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지도층의 변화든,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든 요원한 일이다. 어찌됐든 직접 소통을 해야 변화를 이끌어낼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적·물적 교류든, 비핵화든, 인권이든, 소통을 빨리 하면 할수록 좋다. 그러지 않고 외곽에서 인권을 외치며 압박만 한다면 역효과만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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