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4 18:57
수정 : 2014.12.0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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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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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거나 공허한…’
최근 청와대와 외교 당국이 잇따라 내놓은 3국, 혹은 3자 회동 제안을 보며 든 생각이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제안했다. 지난해부터 중단된 3국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중재자 구실을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일주일여 뒤 정부는 다시 남·북·중 3자 협력 틀을 만들자는 제안을 공개했다. 지난달 초 외교장관이 중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제안한 사실을 보름여 뒤에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이나 주변 환경은 제안이 지닌 진정성이나 실현 가능성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제안은 시기가 공교로웠다. 제안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에서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한 뒤 사흘 만에 나왔다. 두 정상이 국기도 없이 소파에서, 고작 25분가량 냉랭한 회담을 했다지만 예상을 깬 2년4개월 만의 정상회담이었다. 만나도 간단히 인사 정도 하는 비공식적인 회동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외교부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냉랭한 중-일 관계만 믿고 있다가 우리만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날 밤 청와대는 ‘부랴부랴’ 아펙 정상 만찬장에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조우’했다고 알렸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정상회담 뒤에도 교착 국면이다. 양쪽은 ‘(센카쿠열도 문제 등) 동중국해의 상태에 대한 의견차 인정’, ‘역사 직시’ 등을 담은 중-일 관계 개선 4개항 문구를 두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다. 중국 해경선은 다시 센카쿠열도 해역에 진입했다. 한-일 관계 역시 아베의 위안부 존재 부정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의 특사급 방문을 통해 겨우 중-일 정상회담을 얻어낸 일본이야 3자 회동이란 멍석을 깔아주겠다는 한국의 제안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이 성의를 보이고 실질적 조처를 해야 한다”며 떨떠름한 반응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3국 외교장관 회담도 당분간은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대통령의 제안이 절차를 건너뛴 성급한 것이라고 했다. 일부 학자는 “이번 제의는 한-일 관계가 악화할수록 부담을 느끼는 미국이 떠민 것 같다”는 추측도 내놨다.
남·북·중 3자 협력 제안은 더 공허하다. 중국과 북한은 지난해 5월 최룡해 당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과 7월 리위안차오 부주석의 방북 뒤 고위급 교류가 끊길 정도로 분위기가 차갑다.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을 비롯한 고위급은 중국을 거쳐 외국 순방을 가면서도 중국 쪽 상대와 의례적인 인사치레조차 없다. 북한은 중국 대신 러시아에 손짓을 하고 있다. 한국의 태도 역시 3자 협력에 앞서 이뤄야 할 남북관계 개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룡해, 김양건, 황병서 등 북한의 서열 2~4위 급이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총출동하며 트이는 듯했던 고위급 회담은 무산됐다. 정부는 보수단체의 삐라 살포를 방치했다. 또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도 환영했다. 북한은 “핵전쟁이 터지면 청와대가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가”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서로 마주앉을 기본적인 분위기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안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정윤회씨 국정농단 논란 탓에 정신없을 청와대일 터이다. 그러나 툭툭 던져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외교 의제는 이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되뇌는 신뢰 외교를 갉아먹는다. 그나마 지지율을 지탱하는 보루 격인 외교 분야마저 믿음을 잃으면 어쩔 것인가.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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