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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1 18:48 수정 : 2014.12.11 18:48

길윤형 도쿄 특파원

“아, 그런 거예요?”

14일 치러질 일본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이 선거 결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주일 한국대사관에 모였을 때의 일이다. 지금껏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민당은 현재(295석)보다 더 많은 30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이번 선거에서 압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는 내년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서로의 ‘희망사항’이 난무하던 가운데 누군가 “일본에선 선거를 할 때 유권자가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서 낸다”는 얘기를 화제에 올렸다. 그런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고 1년째 일본 관련 기사를 써댔으니, 뭔가 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일본의 공직선거법 조항을 뒤져보았다. 이 법의 46조에서 “선거인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후보자 한명의 씨명(이름)을 스스로 써(自書)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는 규정을 찾을 수 있었다. 후보자 이름을 다 새겨 넣은 투표용지의 이름 옆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한국의 투표 방식과 달라 신선한 느낌이었다.

왜 이런 규정을 만들었을까. 주변에 아는 일본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묻다 제법 그럴듯한 가설을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일본 투표제도의 연원을 따져가다 보면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1869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국가의 틀을 마련한 일본에선 1889년 ‘중의원의원선거법’을 제정해 ‘만 25살 이상이면서 세금을 15엔 이상 납부하는’(6조) 이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세금 조항이 폐지돼 1925년에 ‘25살 이상의 모든 남성’(총인구의 20.12%)으로 선거권이 확대됐다. 일본의 근대적인 교육기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이니,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한 문맹률은 매우 낮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참고로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에게는 1944년 징병제가 조선에 확대 실시된 뒤인 1945년 4월에야 겨우 선거권이 부여된다.

공직 후보자의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한국의 방식과 제 손으로 이름을 써 넣는 일본의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직접 손으로 쓰는 행위는 단순히 도장을 찍는 것과 달리,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이름을 쓰려면,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야 하고, 그 사람의 정책도 한번 더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돼먹지 못한 사람을 대표로 뽑아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면 그의 이름을 직접 적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더욱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일본의 방식은 한국과 달리 지역구별로 미리 투표용지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면, 지난 7·30 재보궐선거 때 ‘동작을’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제3후보의 사퇴가 늦어져, 무효표의 수가 1위와 2위 후보의 표차보다 커지는 코미디 같은 일도 막을 수 있다. ‘묻지마 1번’, 또는 ‘묻지마 2번’을 선택하는 지역주의적인 투표 행위는 물론, 누가 1번을 점하는가에 따라 투표 결과가 휘둘리는 교육감 선거의 문제점도 단숨에 해결된다. 단, 투표용지의 분류가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들이 애를 먹을 순 있고, ‘그래서 일본 정치가 지금 그 모양이냐’고 공격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럼 용지에 ‘박근혜’가 아닌 ‘박근해’라고 적는 경우엔 어떻게 하냐고? 2005년 도쿠시마현 나루토시에서 치러진 시의원 선거에선 후보의 성은 맞게 썼으나 이름 대신 별명인 ‘수염’(히게)이라고 쓴 투표용지도 유효표로 인정됐다고 한다. 후보자의 이름을 유권자가 꾹꾹 눌러 적는 투표제도, 한번쯤 고민해 봐도 좋지 않을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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