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01 18:34
수정 : 2015.01.0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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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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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집에서 <무한도전>의 ‘토토가’를 시청했다. 지난해 ‘응사’(<응답하라 1994>) 열풍 때도 느낀 것이지만 1990년대를 복고하는 이런 방송들을 보면, 내가 90년대 초에 고등학교에 입학해 9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엑스세대’임을 다시 절감하게 된다. 오랜만에 에스이에스(SES)의 노래를 듣고, 들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유튜브에서 가수 바다가 출연한 <불후의 명곡>의 노래를 죄다 찾아 들었더니 어느새 새벽 2시였다.
그렇게 돌아보면, 나란 인간은 결국 그동안 읽은 책, 들었던 음악, 감동했던 영화, 그리고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의 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민족이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 가운데 황순원의 <소나기>,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치욕,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연장 후반전에 터졌던 안정환의 헤딩골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회가 겪었던 공통의 경험에 주목하고 이에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일본이라는 사회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큰 고통을 받았던 한국인 입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인의 심리는,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태도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해 11월3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난 뒤 일본 사회는 (전쟁책임의 문제를) ‘결국 아무도 나쁘지 않았다’는 식으로 정리하고 말았다. 나빴던 것은 당시 군벌이고, 국민들은 (군부에) 속아서 이렇게 큰 비극을 당했다고 말하는 식이다.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이자 피해자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 중국인이나 한국인, 조선인들이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일본의 여성 작가 쓰보이 사카에(1899~1967)의 소설 <24개의 눈동자>를 읽고 나서다. 한 선생님 아래서 공부했던 일본 세토나이카이 어촌 마을 열두 명의 아이들은 전쟁을 거치며 숨지고, 눈이 멀고, 여자아이는 사창가에서 일하게 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소설을 읽고 일본인들이, 그중에서도 일본의 민중들은 ‘잔혹한 전쟁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요절한 가수 오자키 유타카(1965~1992)의 노래 ‘열다섯의 밤’을 들으며 심장이 두근거렸고, 일본의 전후책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심양면 노력해온 일본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가 조금씩 좋아졌던 것 같다.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양국 간에는 위안부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새해가 됐다고 한들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긴 힘들 것이다. 게다가 아베노믹스의 실패로 안전운전을 해야 하는 아베 신조 정권과 잇따른 실정으로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박근혜 정부가 국내적으로 제 살을 깎아먹을 게 뻔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보와 타협안을 내놓긴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긴 호흡으로’와 ‘역지사지의 정신’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 그대로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모른다. 서로의 역사를 배우고, 아픔을 공감하는 작은 노력들을 통해 언젠가 양국이 자국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상대 국민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좋은 절충안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 믿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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