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08 18:46
수정 : 2015.01.0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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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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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의 한 영화사가 만든 영화 <인터뷰> 상영과 해킹 사건이 빚은 소동의 여진이 새해 들어서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소동의 유일한 수혜자는 제작사인 소니픽처스와 그 경영진이다. 소니픽처스는 개봉 2주도 되지 않아 3600만달러(약 400억원)를 벌어 투자원금(4400만달러)을 거의 회수하게 됐다. 이 영화사의 최고경영자(CEO)를 10년째 맡고 있는 마이클 린턴은 아마도 10년은 더 자리를 보장받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는 한때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해 이슬람 세계의 공적이 됐던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출간한 출판사 사장을 맡아 위기 관리를 해본 인물이다.
할리우드 영화사가 장삿속으로 만든 영화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사이, 북-미 관계는 이 소동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 됐다.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 ‘표현의 자유’ 억압을 거론하며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추가 대응책을 검토 중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에 북한은 해킹 연루설을 부인하며 제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소동이 남북관계에 끼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는 모양새다.
이 영화의 저급성과 무모성에 대해선 더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낳고 있는 후과에 대해선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행정명령은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지만 실효성보다는 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북한에 추가적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이다. 이번에 지목된 기관 3곳은 이미 몇년째 제재 대상에 오른 상태이고, 개인 10명도 다른 인물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북한으로선 크게 손해볼 게 없다. 백악관이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소니픽처스가 영화 상영 중단 결정을 내리자 영화업계를 시작으로 여론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국내용’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모처럼 북-미 간에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려는 시점에 이 소동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행정명령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면서 서로 맞대응을 해 다시 대결 국면으로 갈까 우려된다.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해 6~7월께를 기점으로 대화 타진 쪽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된 글린 데이비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당시 방북 제안이 전환점이라고 생각된다. 미국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의 방북 제안은 미국이 억류자 문제뿐 아니라 핵 문제에 관한 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이후 북한이 지난해 11월 억류자 3명을 석방하면서 대화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영화 소동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이런 새로운 대북정책 기류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행정부 내 기류를 아는 한 소식통은 내게 “오바마 대통령이 ‘비례적 대응’을 한다고 했으니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다. 북한이 맞대응을 하지 않으면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2년을 남겨둔 오바마에게 지금 가장 큰 관심은 ‘업적 남기기’다. 노벨평화상을 ‘선불’로 받은 그는 ‘핵무기 제로’ 정책은 이미 물 건너갔지만, 적과 과감히 대화하겠다는 공약 준수에는 관심을 쏟고 있다. 미얀마·쿠바에 이어 북한과도 적대관계를 청산하면 그는 냉전 잔재를 청산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협상과 그 이행에 필요한 시기까지 고려하면 올해 상반기가 아마도 마지막 ‘기회의 창’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가 이제는 군부 강경파를 뒷선으로 물러서게 하고 외교 일꾼들이 적극 나서게 해야 할 때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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