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05 18:38
수정 : 2015.02.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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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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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하면 된다는 금메달 지상주의와 결과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다. 스포츠맨 정신은 심각하게 훼손됐고, 심지어 일부 코치와 선수들은 위법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스포츠 분야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더는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등에서 딴 메달 수로 지방정부의 체육 성과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국내 전국체전부터 메달 집계를 하지 않겠다. 대신 대회 참가율이나 생활체육 활성화 정도 등을 새로운 평가항목으로 삼겠다.”
지난달 말 중국 체육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체육총국이 내놓은 발표다. 엘리트 체육 기조 아래 각종 국제대회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부패와 ‘관시’로 얼룩진 이면을 돌아본 반성문이었다.
여기서 간단한 낱말 바꾸기를 해보자. 금메달 대신 경제성장률을 넣고 메달 집계 대신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평가, 생활체육 대신 취업률을 넣어보자. 중국 경제의 현실이 한층 쉽게 눈에 들어온다. 중국은 물론 세계가 호들갑을 떨며 해석에 바쁜 ‘신창타이’(新常態·경제 구조개혁 도중의 중고속 성장) 또는 ‘뉴노멀’의 의미도 수월하게 와닿는다.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에 접어들었으며 무리하게 고도성장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지도부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지방 지도자가 영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성장률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취업률과 일자리다. 중국은 지난해 1300만개의 도시 일자리를 창출해 목표치인 1000만개를 넘었다. 중국 안팎의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24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16년 만에 스스로 정한 목표치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느긋’한 것은 바로 일자리 분야에서 목표를 초과 달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더는 경제성장률이라는 ‘금메달 따기’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움직임은 각 지방정부의 움직임에서도 현저하다. 중국 경제의 끌차 구실을 하는 상하이시가 신호탄을 쏴 올렸다. 상하이시는 연초 지방 인민대표대회에서 통상적으로 발표하던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아예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 분야에선 각각 50만개 이상, 4.5% 이하라는 분명한 수치를 제시했다. 상하이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지방정부들도 잇따라 경제성장률의 고삐를 늦추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시짱(티베트) 지방정부만이 지난해와 같은 12%의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유지했을 뿐 나머지 성들은 모두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낮춰 잡았다. 중국 31개 지방 정부는 지난해 목표 달성에 모두 실패했다.
‘신창타이’라는 거창한 말 뒤에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침체된 세계 경기와 국가 이미지를 먹칠하는 환경오염,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고용과 경제성장률,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부동산 시장, 2009년을 정점으로 5년째 낮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위험 수위인 소득불평등 지수(지난해 0.469). 이대로는 자의든 타의든 멀리 갈 수 없다는 공산당 정권의 위기감이 바로 신창타이의 모태다. 신창타이란 말 속엔 진퇴양난에 처한 중국 공산당의 불안과 근심이 담겨 있다. 성장률에 짐짓 의연했던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성장률 하락 전망이 잇따르자 금리 인하와 대규모 기반시설 투자를 승인하며 우왕좌왕했다.
성적 지상주의를 버리겠다고 한 국가체육총국의 발표에 한 중국 체육계 전문가는 “그래도 금메달에 대한 집착을 떨어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경제는 어떠할까. 중국 경제의 신창타이 적응기는 이제 시작됐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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