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12 18:49
수정 : 2015.02.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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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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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 정부 당국자와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이 양국 정세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는 간담회가 지난 5일 열렸다. 이날의 대화는 날씨 등 가벼운 화제 사이를 가볍게 미끄러지다 언제나 그렇듯 한-일 관계의 ‘블랙홀’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날 선 토론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이날 일본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일본은 일관되게 ‘일·한 쌍방’의 노력에 의해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착(해결)한다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귀를 단번에 확 잡아끄는 표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일 ‘쌍방의 노력’이라는 단어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그에게 “한국 정부가 일본에 법적 책임을 강요하지 않을 경우 일본이 1995년 출범한 아시아여성기금 때 내놓은 정도의 타협안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법적 책임’ 문제에 가장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이를 양보한다면 일본이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이 흥미로웠다. 그는 대뜸 “그런 논의를 할 때 우리들(정부)이 (국민들에게) 두 가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하나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해온)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이고, 둘째는 “일본이 추가 조처를 내놓는다면 한국도 일본이 원하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 등 (반일적인) 운동들을 자제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에) ‘이것을 하자. 이것을 해달라’고 정부 수뇌부에 제안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게 그의 최종적인 견해였다.
현재 한국은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성의 있는 선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 볼 땐 그들도 한국에 요구하고 싶은 조처들이 많다. 한국이 이런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 상징인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앞서 지난달 말엔 일본 기자들과 일본 정치인을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행사에 참가했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일본 언론인은 미래 한-일 관계에 대해 정치는 냉각되고 경제·문화적으로는 일정 정도의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뉴 노멀’(새로운 균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뉴 노멀의 구조적 배경에는 굴욕적인 1965년 협정을 넘어 좀더 대등한 양국 관계를 요구하는 한국과, 지난 협정의 틀을 포기할 수 없는 일본의 대립이 있다. 196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8달러였던 한국은 지난 5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런 한국이 1965년 협정의 틀로는 담을 수 없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앞으로 1~2년, 어쩌면 수십년이 지나도 한국이 원하는 수준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뉴 노멀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일은 어떻게 사귀어야 할까. 일본은 우리에게 한·일 쌍방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린, 아마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냉각 속의 사귐은 장기간 이어질 것이며, 이 비정상적인 ‘뉴 노멀’은 미래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진정한 ‘노멀’로 자리잡을 것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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