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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6 18:26 수정 : 2015.03.26 22:07

중국과 연관된 외교 안보, 경제 분야 현안들이 한반도에 몰아쳤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다.

사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무기체계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다. 미국과 중국은 두 사안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한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에 부정적이었다. 이 은행이 자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를 뒤흔드는 중국의 도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한국에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한다. 사드는 북한이 아닌 중국을 견제하려는 게 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곤혹스럽다. 미국은 동맹국이다.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한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간 끌기를 선택했다. 한국은 사드에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을 내세웠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엔 “3월 말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3월 말은 창립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마감 시한이다. 적어도 분명한 목표를 지닌 기다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학입시 눈치작전을 방불케 하는 태도였다. 정부의 곤혹스러움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아쉬움과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외교는 타이밍과 주도권의 싸움이라고 한다. 두 사안 모두에서 한국은 때를 놓친 듯해 보인다. 분명한 의사를 표시할 시기를 놓치자 말과 행동이 군색해졌고 원칙 부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드 문제에서 한국은 모호함을 넘어 일관성 없이 불투명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 쪽에서 계속 사드 배치에 관한 한-미 간 교감설이 흘러나왔지만 정부는 ‘제안도, 논의도, 결론도 없다’는 모르쇠 대응을 이어갔다. 그사이 군부에서는 “배치하면 안보에 득이 된다”는 곁가지 말들이 삐져나왔다. 방한한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중국의 우려와 관심을 중요시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자 당국은 돌변했다. 국방부가 “주변국이 안보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 안 된다”고 ‘속 보이는’ 소리를 한 것이다. 단박에 모호성을 던져버리고 발끈해 속을 보인 셈이다. 더구나 국방 당국의 발표는 방한 중이던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의 말과 맞춘 듯 흡사했다. 공교롭게 중국엔 성난 얼굴을 보이고, 미국엔 일방적으로 기우는 모습을 노출한 셈이다.

반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좌고우면하다 부랴부랴 막차에 올랐다. 한국은 가입 시한 닷새를 남긴 26일 밤 가입 의사를 밝혔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의 가입으로 대세는 순식간에 기울었다. 이어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이 도미노 패처럼 가입 의사를 밝혔다. 급변하는 분위기 속에 한국이 지닌 경제력과 정치적 특수성이란 협상 지렛대를 충분히 쓸 틈도 없었다. 버스 탑승 조건을 흥정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타고 봐야 했다. 대세가 기울자 은행 종잣돈을 마련하려 한국에 적극적으로 참여 요청을 해온 중국의 태도도 바뀌었다. 관영 언론들은 “정치적 고려 탓에 발전의 호기를 놓치지 말라”고 훈수를 뒀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0일 “한국도 가입을 적극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선수를 쳤다. 사실상 발뺌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두려는 듯한 논평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눈치를 봐가며 ‘애써’ 신중한 태도를 사수한 사이 중국에 주도권이 넘어가버린 셈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사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지향점의 부재는 전략 없는 시간 끌기로 이어졌고, 급기야 급변하는 상황에 휩쓸리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상대 어느 쪽으로부터도 진심 어린 환영이나 신뢰를 얻어내지 못한 채 부재한 원칙과 초라한 처지만 드러낸 듯해 씁쓸하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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