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 생각해 보니까, ‘간 담화’를 잊고 있었어.” 지난 8일 일본 지식인들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계기로 발표한 ‘한-일 역사문제에 관한 성명’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우쓰미 아이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특임교수가 반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우쓰미 선생은 지난 40여년 동안 조선인 비·시(B·C)급 전범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지식인이다. 간 담화가 역대 일본 정부의 ‘역사 담화’ 가운데 가장 진전된 인식을 밝히고 있으니, 무라야마 담화(1995년)만 강조하지 말고 간 담화의 의미를 다시 상기해 보는 기사를 써보라는 지적이었다. “아, 네 그렇죠, 선생님….” 답변은 했지만,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에 역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구체적인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간 담화는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2010년 8월10일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가 한국인을 상대로 발표한 담화를 일컫는다. 담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여러 가지지만, 핵심은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구절이다. 일본의 총리대신이 지난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음을 인정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일본 입장에선 나름 대단한 용기를 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받아든 한국 사회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5년 전 내 손으로 써내려간 기사들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담화가 나온 다음날인 2010년 8월11일치 신문에 한국 과거사 단체들의 발언을 인용해 “(담화에) 한일병합 조약의 불법성 인정 등의 내용이 빠졌다. 한-일 관계를 중시하겠다고 약속해온 일본 민주당 정부에 속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비판을 실었다. 이틀 뒤엔 일본 지원단체의 의견을 따 “식민지배의 주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뺐고,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소개했다. 비판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때 우리가 일본에 너무 야박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담화는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8월에 발표하는 ‘아베 담화’를 각의 결정(국무회의 의결)하지 않고, 총리의 개인 담화로 발표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주요 언론들이 관련 내용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으니, 기사의 신빙성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게 무슨 차이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각의 결정을 거쳐 정부의 공식 견해라는 무게가 실린 담화는 ‘총리 담화’, 그렇지 않은 담화는 ‘총리의 담화’로 구별한다는 내각총무관실 관계자의 설명도 소개돼 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듯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내용을 뺀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를 막을 별다른 외교적 수단이 사실상 없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