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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6 18:27 수정 : 2015.07.16 18:27

15일 오후, 도쿄 지요다구에 자리한 일본 국회의사당 주변으로 수천명의 일본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정오 무렵 일본의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이 야당의 결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하게 한 안보 법안을 중의원 특별위원회(한국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켰기 때문이었다. 장마가 끝나 찜통더위가 시작된 도쿄의 한낮 기온은 35도. 한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아베 타도”를 외치는 일본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뭔 고생인가 싶어 벌컥 짜증이 솟아올랐다.

현재 일본에선 이 법안이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그 행사를 국제분쟁의 수단으로 영원히 포기한다”고 밝힌 헌법 9조를 위반한 게 아니냐는 ‘위헌 논란’이 진행 중이다. 실제 <도쿄신문>은 지난 9일 200명이 넘는 법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 90% 넘는 이들로부터 “위헌”이라는 회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법안이 ‘위헌 또는 위헌성이 매우 높은 것’이라는 데엔 학계의 일반적인 합의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그에 대한 자민당의 선택은 수적 우위를 앞세운 ‘강행 통과’라는 초강수였다. 이대로 국회에서 논리 싸움을 계속해 봐야 점점 더 불리해질 뿐이라고 판단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결국 결단을 내린 게 아닌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아베 총리 주변 인사들이 지난 며칠 동안 입버릇처럼 말해온 “결심해야 할 때가 오면 결심한다”는 말도 결국 자민당의 궁색한 처지를 인정한 발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일본인들은 이런 위헌적인 법률에 헌법소원을 내지 않는 것일까?

사실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할 수도, 어쩌면 매우 복잡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위헌 소송이 불가능하지만, 법이 제정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엔 헌법재판소가 없다. 따라서 법률의 위헌성을 가리려면 일반 법원에 위헌 소송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소송의 구조가 복잡하다는 게 일본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일본에선 어떤 법률이 위헌인지를 물으려면, “그 법이 합헌인가, 위헌인가”만을 묻지 못하고, “위헌적 법률이나 정부 행위로 피해가 발생했으니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 달라”는 구조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실제로 일본 시민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12월 감행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이는 “정교분리 원칙을 못 박은 일본 헌법 20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위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이 재판의 소장을 보면, 매우 흥미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원고들이 법원에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원고 1명당 1만엔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그동안 진행된 11차례의 유사 재판에서 단 한 차례도 손해배상을 인정한 적이 없다.

실제 소송이 시작된다 해도 문제다. 집단적 자위권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보수적인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위헌’이라는 대담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하긴 쉽지 않다. 또 3심에 걸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려면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재판을 진행할 실익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강고해 보였던 일본의 입헌민주주의란 사실 이처럼 매우 취약한 구조 위에서 유지돼 왔던 셈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결국 이는 최종적으로 한·일 양국의 정치 문화와 전통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샌 실망스런 결정들로 이름값을 못하고 있지만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1987년 ‘6월 혁명’이 만들어낸 민주화의 가장 분명한 성과물 가운데 하나다. 한국엔 있지만,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타도해 본 적이 없는 일본엔 없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헌법재판소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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