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23 18:55
수정 : 2015.07.23 18:55
78위안(1만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전시실에 들어서자 청동 인물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년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얼굴을 빼다박은 두 청년이 힘차게 앞으로 발을 내딛는 찰나다. 전시실은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 당시 농촌으로 하방된 청년들이 희망과 신념에 찬 표정으로 농민들과 어울려 쟁기질하는 사진으로 빼곡하다. 곳곳마다 “농촌에서 배우라”는 마오쩌둥의 모습이 빠지지 않는다. 전시실 끝 부분에 이르자 하방을 경험한 내로라하는 위정자들의 면면이 등장한다. ‘지식청년’ 시진핑과 리커창을 필두로 장더장, 왕치산 상무위원, 왕이 외교부장, 푸잉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외사위원회 주임,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까지 줄줄이다.
이달 1일부터 ‘냐오차오’(鳥巢·새둥지)로 불리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지식청년전’의 19일 풍경이다. ‘지청’ 전시는 중국 전역 100여곳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하방운동’은 문화대혁명 전후로 홍위병의 무질서와 폭력행위를 통제하고자 마오쩌둥이 전국 청소년 1776만명을 오지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이다. “겨울에 땅이 얼어 삽질을 할 때마다 손은 물론 심장까지 전기충격 같은 고통이 전해졌다. 하방 2주 만에 나는 이 마을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맹세했다”(<홍위병> 저자 선판), “(광시좡족 자치구) 난닝에 도착한 직후 심한 피부발진을 일으켰지만 진료소는 40㎞ 이상 떨어져 있었다”(<대륙의 딸> 저자 장융) 등 대다수 ‘지청’들은 당시의 끔찍함을 증언한다.
‘지식청년전’은 시진핑 정권 들어 날로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상 이념 단속은 집권 2년 반을 넘어서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7월의 ‘실적’만 해도 무수하다. 퉈전 광둥성 선전부장은 최근 중앙 선전부 부부장으로 ‘영전’했다. 그는 2013년 신년 사설에서 법치와 언론 자유를 주창한 <남방주말> 검열을 주도한 인물이다. 언론자유를 더욱 옥죌 것이란 명백한 신호다. 개혁성향 잡지 <염황춘추>의 양지성 전 편집장은 “검열에 걸린 기사 비율이 2012년 80%에서 지난해 90%로 치솟았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 한탄했다. 23일엔 중국의 방송, 신문 등을 감독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건강한 사회주의 가치관을 전파해야 한다”며 쇼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제작 지침을 내렸다. <마오시대의 중국>을 펴낸 앤드루 월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문혁 시기 마오의 모습이 현재 시진핑 정부에서 엿보인다”고 말했다.
공안 단속도 부쩍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13일엔 동북지역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테러 단속이 벌어져 3명이 사살됐고, 다음날 네이멍구 자치구에서는 영국인 9명 등 외국인 관광객 20명이 테러 관련 동영상을 함께 봤다고 추방됐다. 1일 제정된 새 국가안전법의 위력이 발휘되는 모양새다. 이 법은 안보 범위를 종교, 인터넷, 우주 등까지 확대했다.
중국 위정자들의 사회통제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떠받쳐온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지금, ‘복고’와 ‘향수’까지 동원한 통치술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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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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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얼마나 지금 중국인들의 마음을 모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중국인은 “문혁 시절의 추억에 젖을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 인민들에게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가겠느냐’라고 묻는다면 열이면 열 모두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지식청년전을 둘러보는 동안 함께 있던 관람객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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