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미국은 경이로운 나라였다. 아버지는 뭉툭한 양날 면도기를 사용했는데, 가끔 미제라고 자랑하곤 했다. 6·25 전쟁 직후 군에 복무했던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30년 넘도록 그걸 사용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튼실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신기해했다. 학교에선 ‘아름다운 나라’라는 한자로 쓰는 나라로 배웠으니 더 특별했으리라. 그러나 ‘1980년 광주’를 겪으며 미국은 나에게 야속한 나라가 되었다. 총칼로 수많은 양민들을 죽인 군사독재 정권의 행위를 묵인해줬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나는 우리나라가 대소련 봉쇄의 충실한 전진기지 구실을 해주는 것이 미국의 최우선 국익이고, 미국은 이런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반미주의자는 아니었다. 80년대 중반 서울의 한 대학 교정에서 처음으로 ‘양키 고 홈!’이란 구호가 울려퍼진 현장에 있었지만, 그 주장을 완전히 지지한 건 아니었다.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미국을 어느 정도 활용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9·11 테러와 이라크전을 보며 미국은 무소불위의 국가로 다가왔다. 9·11 테러 당시 신문사 국제부에서 야근 당직을 서며 이슬람 성전의 극단성에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이후 이라크전으로 몰아쳐 가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행태에도 경악했다. 미국은 결국 이라크전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개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미국엔 정보 판단 오류로 인한 단순 실수에 불과했으나, 이라크 국민들에겐 거대한 재앙이었다. 워싱턴 생활 3년을 마무리하면서 미국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해봤다. 미국이 전반적으로 선진 민주사회인 것은 분명하나, 점차 위험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전세계에 자유를 전파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는 ‘미국 예외주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넓게 미국 사회에 퍼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 진보파는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시리아 지상전은 거부했으나, 지난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는 발을 담갔다. 그는 정치권의 압박은 물론이고,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퍼지면서 여론이 악화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전쟁을 다시 선포했다. 두번째는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점차 부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산 교과서였던 미국 정치시스템은 기득권층의 강고한 세력 규합과 돈 정치로 오염되고 있다. 공화당 부시 가문과 민주당 클린턴 가문이 한 세대 가까이 미국 정계를 주무르는 게 그 방증이다. 몇년째 계속되고 있는 양당의 극단적인 정쟁도 그 결과물이다. 2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하원의원들이 사실상 정치자금에 휘둘리고 있는 걸 나는 직접 목격했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돼, 외국에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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