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잠깐 동네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 전통 있는 꽤 큰 교회였던 것 같다. 부목사도 있었고, 정기적으로 규모 있는 부흥회도 열었으니 말이다. 그 교회를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막 샘솟기 시작한 나의 신앙심에 철퇴를 내린 부목사의 설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영적인 삶’을 강조하던 담임목사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이런 요지의 설교를 했다. “막대기를 앞에 놓고 ‘움직여라, 움직여라’ 기도하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구름 위에서 내려오라’는 그의 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북한 핵 문제를 보면서 부목사의 설교가 떠올랐다. “핵을 포기하라, 핵을 포기하라”며 한국과 미국 정부는 벌써 몇년째 메아리 없는 주문만 외고 있다. 막대기가 움직일 까닭이 없다. 움직이기는커녕 땅에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붕괴, 또는 그 변종인 통일을 애절하게 기원하며 하늘의 감읍을 기다리는 사이에,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고 있다. 북한 핵 문제의 권위자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최근 발표한 ‘북한 플루토늄과 무기급 우라늄 보유량’ 논문에서 엄중한 현실을 경고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이 지난해 말까지 생산한 핵물질들을 모두 무기화했을 경우 모두 10~16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가정에 가정을 거듭한 추정일 뿐이다. 더 암담한 것은 북한의 정확한 실제 핵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올브라이트 소장의 추정치도 기껏 6자회담 속에서 북한 핵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었던 2008년까지의 자료, 2010년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한 육안 자료에 바탕했을 뿐이다. 북핵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통로가 5년가량 차단된 지금, 트럭이나 인력의 움직임 따위 같은 부정확한 위성자료로 퍼즐을 맞추는 게 고작이다. 정부는 북핵 및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 능력을 키운다며 혈세를 들여 부지런히 신무기를 사들였다. 미국 군수업체들과 사기 수준의 일방적 계약을 맺은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북한 핵능력 증강을 막았는가.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펜타곤에 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는 사진을 찍는다고 북한 핵능력이 줄어들겠는가. 물론, 16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박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 움직임을 보일 때는 ‘도발 강력 경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북핵 포기 땐 경제 재건 및 주민 생활 지원’이라는 도식화된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평화구상,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미국도 동의했다고 얘기할 것이다. 종교적 신념으로 승화된 듯한 통일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다. 지겹지 아니한가. 속내를 털어놓는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들도 북핵 해법 없는 박근혜 정부에 답답해하고 있다.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협상의 성과와 실패에 대한 책임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이 중요하고, 여기서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능력과 무능력이 판가름난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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