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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2 18:40 수정 : 2015.10.22 18:40

#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하자 중국에서는 부친인 시중쉰 전 부총리 재조명 바람이 일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2013년 시중쉰의 일대기를 다룬 6부작 다큐멘터리를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편성해 방영했다. 시중쉰은 중국 사회주의 건국에 이바지한 혁명가이자 덩샤오핑을 도와 개혁개방 정책을 이끈 선구자로 그려졌다. 지방 정부는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도 잇따라 성대하게 열었다. 그해 시중쉰 기념행사는 마오쩌둥 탄생 120돌 행사보다 부각됐다. 지난해 말엔 중국 출판사들이 시중쉰의 개혁개방 업적과 인생을 재조명한 <시중쉰 화보전기>를 펴냈다. 시중쉰은 시진핑 집권 전만 해도 그리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까닭에 중국 안에서는 “시류에 편승한 뒤늦은 호들갑”이란 수군거림이 일었다. 외신들도 “시중쉰 우상화가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2. 중국 산시성 옌안시 량자허촌은 이달 초 중국 문화혁명기 농촌으로 하방된 청년들의 삶을 다룬 45부작 대하드라마 제작에 들어갔다. 량자허촌은 하방된 시진핑이 1969년부터 7년 동안 생활했던 곳이다. “역경을 이기고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는 시 주석의 회고담처럼, 그를 모델로 한 모범적인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임을 점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3. 중국 공산당은 21일 ‘공산당기율처분조례’를 발표했다. 내용인즉 ‘신문 방송과 인터넷, 서적 그리고 각종 좌담회 등에서 당 중앙과 국정에 관해 함부로 언급하는 사람은 당적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조례는 ‘국가 지도자를 비방하고 당·군의 역사를 왜곡하는 자’를 구체적인 처벌의 대상으로 적시했다.

최근 한국을 평지풍파로 몰아넣은 대통령의 한국사 국정 교과서 파동을 보며 떠오른 중국의 풍경들이다. 이런 일들은 일당 집권체제의 중국에서나 벌어지는 남의 나라 일이라 여겼다. 새로 권좌에 오른 지도자가 ‘초인’으로 묘사되고, 그의 선대까지 거슬러 미화되고,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건 철 지난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시대착오적인 일이 한국에서 시차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분열과 갈등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논리는 중국 시진핑 체제의 논리와 무척이나 흡사하다. 그는 5년밖에 시행하지 않은 검정 교과서 제도를 부친의 유신시대처럼 국정화로 되돌렸다.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무엇을 그렇게 바로잡고 싶은 것일까. 그의 심지는 집권 첫 여름휴가 장소로 부친과 함께 갔던 저도를 선택하고 해변에서 ‘저도의 추억’을 쓰기 전부터 단단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지켜봤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유신과 5·16 군사쿠데타와 관련된 물음만 나오면 연신 허방다리를 짚고 심한 모욕을 당한 듯 과민반응을 보인 그를.

대통령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바로 쓰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 부친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이 그토록 바로잡고 싶어 집착하는 역사는 이승만 대통령 시기나 그에게 생계비 6억원을 주고 신당동 옛집으로 돌려보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의 역사는 아닌 것 같다. 단순 화법을 곧잘 쓰는 대통령은 좀 더 솔직해져야 할 것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한 중국 지인은 시진핑 시대의 일련의 작업을 “아무리 관영매체에서 선전을 해도 개인숭배 작업 같다. 속이 보인다”고 했다. 중국처럼 닫힌 사회에서도 인민들은 위정자의 의도를 꿰뚫어 본다. 한국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이 열린 사회다. 국정 교과서로 사람들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다는 발상은 허망해 뵌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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