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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7 19:04 수정 : 2015.12.17 19:04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정 교과서 사태는 우리 외교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칼럼을 지난달 초 쓴 적이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이 해외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될까 봐 현장 외교관들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응하느라 쓸데없는 외교력의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우려는 현실화됐다. <뉴욕 타임스>가 지난달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주의적 자유를 퇴행시키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비판의 강도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외국 언론들의 한국 민주주의 상황에 대한 곱지 않은 보도가 줄을 이었다.

미국의 진보적 잡지인 <더 네이션>이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것을 계기로 국외 언론의 보도에 대한 정부의 물밑 대응이 드러났다. 기사를 쓴 팀 셔록은 페이스북에 “박근혜 정부가 이 기사에 대해 강하게 불평했다”고 말머리를 쓴 뒤, 편집장이 전한 내용을 공개했다. 셔록이 전한 <더 네이션>편집장의 말은 “뉴욕에 있는 총영사관 쪽이 수차례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나(편집장)를 만나 당신(셔록)의 기사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한다. 내가 통화한 그 사람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거나 주장하지도 않았다”는 거였다.

야당 정치인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뉴욕 총영사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행동대’에 불과할 뿐인 총영사관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과녁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런 비판은 분란을 일으키게 만든 ‘몸통’을 뒤로 숨겨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몸통은 누구인가. 현지 공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은 이른바 ‘본부’로 불리는 외교부의 지시 없이는 독자적으로 이런 짓을 할 만한 배짱이 없다. 이번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론한 기사와 관련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뉴욕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관계자들을 통해 본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교부 공식 브리핑을 훑어봐도 이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사설이 나온 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뉴욕 타임스>쪽에 이해를 도모하고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조 대변인은 뉴욕 총영사관이 셔록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통상적인 대외 언론 활동의 일환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본부의 지시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교부가 공식적인 언론 브리핑에서 밝히는 입장은, 특히 이번처럼 예민한 문제에 대해 언론 대응을 할 때는 상당한 고위 인사들의 결재나 지시가 있어야 한다. ‘미국통’이라고 불리는 고위 인사들이 미국 언론과 접촉해, 게다가 미국적 사고에서 보면 별로 설득력 없는 반론을 관철시키려 할 때 파생할 수 있는 문제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걸 몰랐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고, 알고서도 지시를 했다면 국가의 평판은 뒷전으로 제치고 그분의 심기만 고려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자신들이 한 일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지시대로 잘 이행했다며 뉴욕 총영사관을 칭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또한 외교부는 청와대와도 긴밀히 ‘협의’를 하면서 최종적인 사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일선 부처의 자율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은 독주하는 박근혜 정부와 견제 기능을 상실한 야당을 향해야 한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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