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24 18:45
수정 : 2015.12.24 18:45
중국 경제성장률은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수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국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치는 따로 있다. 실업률 수치다. 중국 정부의 지상 과제는 공산당의 확고한 집권 유지다. 실업률 증가는 곧 정권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성장률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25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는데도 ‘자신만만’했다. 1100만개 일자리 창출 목표를 222만개나 초과 달성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중국 정부는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성장률 감소는 감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2015년 말미에 ‘복병’이 나타났다. 실업률 수치보다 더 챙겨봐야 할 수치가 등장한 것이다. 미세먼지 농도를 나타내는 PM 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 먼지 수치)다. 12월 들어 상상을 초월한 스모그는 무덤덤한 베이징 시민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농도 1000에 육박하는 스모그는 일찍이 없던 현상이다.
스모그가 휩쓸고 간 뒤 사람들은 부쩍 많이 아프다. 한 이웃은 벌건 두드러기가 났다. 한 학부모는 아이 감기가 너무 오래간다고 겨울방학을 코앞에 두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목감기와 기관지염을 앓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고강도의 스모그가 인체 면역체계를 흔들어버린 것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다. 베이징에서만 수십년을 살아온 한 중국인은 “어서 돌아가십시오. 사람 살 데가 못 됩니다”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부터 올해 9월 열병식까지 1년가량 푸른 하늘 맛을 본 터라 시민들의 당혹감은 더 크다.
중국 당국은 12월 들어서만 두번째 가장 높은 수준의 스모그 경보인 적색경보를 발동했다. 하지만 인민들은 정부를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 보듯 한다. 때를 놓치고 ‘고무줄’ 경보를 발동하는 탓이다. 정부는 이달 초 농도 1000의 스모그가 왔을 때는 적색경보를 발동하지 않았다. 여론이 들끓자 적색경보를 남발했다. 특히, 두번째 경보 때는 경보가 해제되자 스모그 수치가 외려 더 치솟았다. 정부는 3월 스모그의 위험성을 다룬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 전 앵커의 <돔 천장 아래서>를 틀어막은 전력도 있다.
인민들은 정부가 미덥지 않다. 상식을 초월하는 스모그와 잇따른 적색경보는 ‘아니 대체 이 스모그는 왜 해결이 안 되는가. 정부는 대체 뭣 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 핵심을 궁리하도록 했다. 인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스모그를 방치하는 것은 권력의 직무유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중국의 인민들은 ‘스모그야말로 만인이 평등한 것’이라며 자조와 여유가 섞인 농담을 했다. 그러나 스모그가 임계점을 넘어버리자 인자함과 여유는 줄어든 것 같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절망과 아우성이 넘친다. 스모그는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위해 적당히 ‘관리’를 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민의 생존과 공산당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려면 해결해야만 하는 필수 과제로 부상했다.
지난해 2월2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예고 없이 베이징 시내의 맛집과 옷집이 몰린 번화가 난뤄구샹에 나타났다. 주황색 스모그 경보(적색경보보다 한 단계 낮은 경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인민복 차림의 시 주석은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후퉁(골목)을 돌며 인민들의 안부를 물었다. 당시 베이징 시민들은 ‘스모그를 뚫고 시다다(習大大: 시 주석의 별칭)가 나타났다’고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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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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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이 다시 한번 스모그 속에 깜짝 등장한다면 어떨까. 인민들은 그때만큼의 환호를 보내줄까. 글쎄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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