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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7 18:37 수정 : 2016.01.07 18:37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북한이 정말 수소폭탄 실험을 했는지, 추가 제재를 받을지, 주식시장은 어떻게 될지 등으로 쏠릴 것이다. 일본과 어이없는 군 위안부 타결을 해놓고 국내 반발로 노심초사하던 박근혜 정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쏟아놓을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이번에도, 남북의 적대적 공생은 유감없이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는 다시 역사의 뒤안길에 쓸쓸하게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안부 문제 타결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의 접근 방식에서 번져나오던 냉기에 대해선 다시 한번 짚어보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특보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 특보를 신문사 선배들과 함께 송년회에서 뵌 적이 있다. 아마도 그가 현직에서 은퇴한 지 5년 정도 흐른 2007년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 앞에 늘 붙어다니던 ‘전략가’, ‘책사’라는 호칭 때문에 그가 냉혈한일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그의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산가족 문제와 북한의 식량난을 거론하면서 눈에 살짝 이슬이 맺혔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한 통일부 관리는 진정한 전략가는 앞을 내다보는 책략과 따뜻함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임 특보한테 배웠다고 고백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문제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약간의 따뜻함이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며 3년 동안 일본을 밀어붙일 때만 해도 조금은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 주변의 참모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12·28 합의’를 보면서 역사의 가장 약자였던 할머니들에 대해 조그만 애정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합의에 도장을 찍어줬을까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란 문구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는 문구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전시하에서의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냥 한-일 간의 ‘중요한’ 외교 현안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1990년대 코소보 내전, 시에라리온 내전, 르완다 내전에서 자행됐던 수많은 여성 인권 유린에 대해 한·일 정부는 말할 자격이 없다.

미국 워싱턴의 외교안보 전략가들도 미래를 위해 과거의 문제는 옆으로 치워놓자고 공공연히 얘기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한-일 간 위안부 타결에 대해서도 기다렸다는 듯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른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걸림돌이 제거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전략가들의 가슴에서 약자에 대한 따뜻함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역설적으로, 이번 위안부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이 왜 종종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미국의 그늘을 보게 된다.

외교적 협상이 일방의 승리로 끝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상대국 내부의 정치적 반발을 불러 결국은 합의 자체가 깨지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그러나 협상력이 불리한 국가가 막판에 힘에 밀려 수용하게 되는 ‘옥쇄전략’을 택한 이번 합의는 반집승도 아닐뿐더러, 역사의 약자에 대한 따뜻함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전략도, 진정한 합의도 아니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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