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부임한 지 2년이 지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한·일 두 나라의 관계 악화를 재촉하는 진정한 이유는 두 나라 국민들의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특히 간접화법, 인용구, 애매모호한 말끝처리 등으로 점철된 일본 정치인들의 말을 들으면 지금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동될 때가 너무 많은데, 그런 예를 들자면 아마도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 당국 간 12·28 합의가 나온 뒤, 쏟아지는 한국 내의 반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됐다. 개인적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들이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해’에 근거한 비판이라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의 입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가운데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것 같은 기술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2007년에 각의 결정했다. 이 입장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이번 합의를 통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종류의 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19일치 <중앙일보> 등이 크게 보도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효임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12·28 합의를 부정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합의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또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통치 아래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한 것 등 전체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고 밝힌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여러번 말해왔다. 이 문장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주체, 즉 주어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모집·관리·이송에 ‘군이 관여’했고, ‘전체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기 때문에 강제적인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줬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신매매라는 범죄를 저지른 주체, 즉 생략된 주어는 ‘업자’이며, 군이나 일본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법적인 책임’은 없고 ‘도의적인 책임’만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일본이 인정하는 ‘책임’이란 인신매매라는 범죄를 저지른 업자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도의적, 2차적인 책임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일본군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강제연행’(인간 사냥을 하듯 머리채를 끌고 가는 것)을 “지시했음을 보여주는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부의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즉, ‘강제성=도의적인 책임=(업자에 의한) 인신매매’는 인정하는 것이고, ‘강제연행=법적 책임=전쟁범죄’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인정한 것이 없으니 사실상 뒤집을 것도 없다. 이 같은 점을 돌아보면, 12·28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을 바꾼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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