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28 20:38
수정 : 2016.01.28 21:14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이 있다. 손실 위험은 도외시한 채 고수익 환상만 쫓아 모든 투자금을 쏟아붓는 초보 개미투자자들에 대한 경고다.
외교도 적절한 외교자원 배분이 중요하다. 저수익·저위험 투자군에 속했던 미국에 일방적으로 ‘몰빵’하던 시대는 지났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국은 고수익·고위험 투자처로 떠올랐다. 정교한 투자전략이 필요하다.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는 일본의 아베 정부는 위험도는 높고 수익은 별로 나지 않는 저수익·고위험 투자처로 변했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접근을 취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투자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특정 국가에만, 혹은 특정 국가와의 관계에서 한 이슈에만 ‘몰빵 외교’를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아무리 초보 대통령이라도 그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 외교는 몰빵 외교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일본 외교에선 군 위안부 문제에 ‘올인’했다. 협상의 출구에 놓아야 할 목표를 모든 한-일 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아베 정부의 기습으로 맺어진 ‘12·28 합의’ 뒤 가해자는 큰소리를 치고 피해자는 되레 쩔쩔매는 희한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대중국 외교를 보면,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전형적인 ‘몰빵 외교’였다. 외교적 운신의 폭을 극도로 좁힐 수 있는 위험한 카드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승절 참석을 놓고 고위험은 감춘 채 고수익만 홍보했다. “최상의 한-중 관계”, “조속한 평화통일을 위해 두 나라가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합의”라며 대박이 난 것처럼 자랑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의 대중 외교가 거둔 고수익은 결국 ‘과장 광고’였음이 드러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와 중국의 평화통일은 애초부터 개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평화통일’의 범주에 북한 붕괴도 포함돼 있다고 믿고 있다. ‘전쟁’만 없으면 넓은 범위의 평화통일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선 ‘북한의 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은 평화통일이 아니다. 남북 협력과 교류에 따른 자연스러운 단계적 통일만이 ‘평화통일’이다. 서로 계약조건이 안 맞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계약이 성사됐다고 착각했거나 국민들을 호도한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는 대중국 압박 쪽으로 또다시 ‘몰빵’을 하며 널뛰기하고 있다. 중국이 한-중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그어놓은 ‘사드 배치 검토’ 발언이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북한을 뺀 5자회담’ 따위를 창의적인 해법이라고 내놨다.
몰빵 외교의 결말은 외교적 고립이다. 중국은 대미 전선에서 한국을 중립화하려는 노력이 실패했다고 판단하면, 북한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를 가능성도 높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지금은 북핵 문제를 놓고 중국에 핏대를 올리는 것 같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가 나오면 미-중 관계 관리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북핵 문제를 놓고 중국과 사생결단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업적이라고 치장해온 3월 말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마무리가 더 중요하므로 중국과 척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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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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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좋게 중국과 한판 붙겠다며 깃발을 들고 나아갔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동북아에서 혼자 남아 있는 한국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몰빵 외교는 위험한 도박이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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